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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02. 2023

희미하던 것이 밝아지는 기쁨

이동섭의 『사랑의 쓸모』

공군들이 읽는 책 소개 칼럼


월간『공군』이라는 간행물에 격월로 책 소개하는 칼럼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번 달에 제가 다룬 책은 전에도 간단하게 리뷰를 썼던 이동섭의 『사랑의 쓸모』입니다. 월간『공군』은 1950년에 창간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정통 기관지라도 딱딱하지 않게 칼럼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집필을 의뢰 받은 이야기부터 썼습니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제게 연락을 해왔던 공군 장교 이름이 나오더군요. 저는 '김용휘 대위'라는 실명을 쓰기로 결정 했습니다. 다행히 공군 측에서 흔쾌히 받아들였고 김용휘 대위도 좋다고 허락을 해서 실명을 씁니다. 매달 13,500부 정도 발행하고 공군 가족들도 함께 읽는 책이니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도 이 칼럼을 좋아하겠죠? 즐겁게 읽어 주십시오. 


희미하던 것이 밝아지는 기쁨


작가들은 도대체 어떤 루트를 통해 칼럼을 쓰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아는 사람을 통해 매체를 소개받지만 가끔은 모르는 사람에게 이메일을 받기도 합니다. 이번 칼럼도 그런 케이스입니다. 브런치를 통해 제 글을 읽었다는 한 공군 장교가 이메일을 보냈더군요.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소개하는 「한 달 한 권」이라는 코너를 맡아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니, 무슨 군인이 책을 좋아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며칠 전 봤던 연극 《광부화가들》에서도 광부들이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군인이라고 책벌레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아니, 오히려 책을 읽을수록 군의 수준이 올라갈 테니 더 권장해야죠. 편지를 보낸 사람은 대한민국 공군 기관지인 월간 『공군』의 기획과 편집을 맡고 있는 김용휘 대위였습니다. 기관지의 칼럼에서 편집자 실명을 공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요? 그런데 하면 안 되는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김용휘 대위, 이름도 멋진데.

그래서 오늘 소개할 책은 『사랑의 쓸모』(몽스 북)입니다. 이 책은 저자 이동섭이 읽은 고전소설 중 사랑과 연애에 관한 소설 17권을 골라 그 작품의 의미와 작가가 숨겨놓은 뜻까지 재밌게 살피고 있습니다. 흔히 고전이란 ‘누구나 제목을 알고 있지만 정작 읽지는 않는 책’이라는 말이 있죠. 그래도 저는 문학을 전공했으므로 책을 꽤 읽었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때 내가 이 책을 읽은 게 맞아?’하는 당혹감과 경탄의 순간을 오가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쓸모』는 세계 명작을 안 읽은 사람이 아는 척하기에 좋은 책이 아니라 읽었다고 생각한 고전을 다시 읽을 때 어디다 포인트를 두면 좋은가를 알려 주는 책입니다. 무턱대고 차의 시동부터 켜는 사람보다 지도책이나 내비게이션으로 길 전체를 미리 파악하는 사람이 운전을 더 잘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이 책을 읽고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실은 제임스 개츠)를 비로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는데 그걸 모르고 부자가 되면 데이지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여긴 개츠비의 씁쓸한 착각이 ‘위대한 개츠비’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낳았음을 알게 된 겁니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장 인기 있는 이유는 ‘오해’인데 이 소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던 거죠. 이런 맥락을 잡고 나니 희미하던 것이 밝아지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사실 새로 알게 된 것이 이것만은 아닙니다. 소설을 뜻하는 프랑스어 로망(roman)이라는 말은 중세 성직자들이 쓰던 라틴어가 아닌 로마어로 쓰여진 통속적인 이야기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소설이라는 장르는 태생부터가 통속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구조는 오페라부터 아침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는 것이죠. 아울러 셰익스피어가 침실(bedroom), 비평(critic), 연애편지(love letter) 같은 단어를 처음 만들어 낸 작가라는 것도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입니다.

도대체 이런 지식과 통찰을 겸비한 이동섭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찾아보니 파리 제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사진학, 현대예술과 뉴미디어 등으로 학사와 석사를, 예술과 공연미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이동섭의 패션인문학’, ‘이동섭의 빠담빠담’ 등의 칼럼을 한국일보와 한겨레에 연재했더군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EBS클래스e 등에서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는 강의를 했고요. 한 마디로 예술과 문학, 문화 전반에 발을 뻗친 르네상스적인 학자입니다.

이렇게 문화에 대한 입체적인 지식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 쓰는 문장은 관념적이지만 공허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책 초반에 ‘연애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연애할 때 우리는 참지 못할 일을 참고, 참을 만한 일은 참지 못한다.’라는 문장을 읽고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한 꼭지가 끝날 때는 다른 작품의 주인공을 소개하는 ‘예고편’ 같은 글이 등장해 책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본문에 써도 될 얘기를 논문처럼 각주로 달기도 하고요. 내용과 형식에서 여러 모로 재미있는 책입니다.

스탕달의 『적과 흑』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부터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등 우리에게 친숙한 소설들이 ‘사랑의 쓸모’라는 큰 제목 아래 모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제목은 선을 길게 늘여 확장시켜 보면 ‘소설의 쓸모’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작가가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소설을 읽죠. 거기에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뿐 아니라 영화도 그렇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영화란, 진리를 위한, 혹은 진리를 찾기 위한 초당 24개의 거짓들이다."라고 한 것도 그래서였겠죠.

자, 새로운 칼럼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매달 여러분께 제가 만난 책을 한 권씩 소개하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공군에 입대한 것은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조망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처럼 높은 곳에 오르지 않아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독서입니다. 흔히 뛰어난 작가나 사상가의 생각을 읽어내는 행위를 '거인의 어깨에 기댄다'라고 표현하죠. 한 달에 한 번씩 저도 당신도 거인의 어깨에 기대는 시간을 만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날이 춥습니다. 건강 잘 챙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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