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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22. 2022

나만 머리를 감고 나온 거야?

글 쓸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나는 대체로 운이 좋지 못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요?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없는 것처럼 '원하던 직업이 있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지금 이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더 많이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카피라이터를 거쳐 작가가 된 저는 그야말로 행운아라고 할 수 있죠. 무라카미 하루키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자신은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런 자격을 누구에게서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신은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까지 뒤따라 지금과 같은 소설가가 되었노라 고백합니다.


그제 제 첫 책을 냈던 몽스북의 안지선  대표와 압구정에 있는 할머니현대낙지아구감자탕집에서 만나 내년에 쓸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손님이 별로 없는 오후 5시였는데 탤런트 강부자 선생이 지인들과 함께 오셔서 조용조용 얘기를 나누고 계시더군요. 그동안 전화나 카카오톡 메신저로 간간이 주고받았던 집필 기본 방향과 글쓰기 태도를 보강해서  A4지 두 장에 정리해 갔더니, 안 대표님은 눈 밝은 독자들의 시비가 없도록 목차의 카테고리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정하면 다음 책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처럼 매일 글을 쓰고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게재할 수 있게 된 건 다 첫 단추를 잘 꿰어준 안 대표님 덕분입니다. 안 대표님은 제 원고를 잘 정리해 책으로 엮어준 것은 물론 엄유정이라는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가 제 책 표지를 장식해 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원고를 쓴 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약간의 친분만 있던 이명수 김탁환 장석주 선생 들께 추천사를 써달라고 떼를 쓴 것뿐이었죠.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는 잊지 못할  책 제목도 대표님과 회의를 하면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나온 책은 열흘 만에 2쇄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출판계에서는 그야말로 '듣보잡'이었던 제게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은 화목하지 못했고 돈도 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악물고 공부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며 살게 된 건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행운이 시작된 건 아내를 만난 다음부터였죠. 뒤늦게 나타난 그녀는 저를 알아봐 주고 격려했으며 언제나 제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안지선 림태주 한기호 대표님 들을 차례로 만나 세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던 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들을 만나면서 제가 정말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고 지금처럼 글쓰기 강연과 책쓰기 워크숍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북토크와 글쓰기 강연을 듣고 다른 분들께 추천해 준 전국의 서점과 도서관 선생님들 또한 잊지 못할 은인들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삶을 시시콜콜 꿰뚫고 있는 시골 의사를 따라다니며 쓴 존 버거의 『행운아』를 읽다가 이런 이야기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그 책엔 비행과 경비행기에 미친 농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존 버거와 의사의 도움으로 엔진을 예열시키고 비행기가 이륙시킵니다. 이륙 직전, 농부의 얼굴엔 비로소 안도의 표정이 스칩니다. '그 순간에 문제가 되는 것은 공기의 역학과 작은 엔진의 작동 여부뿐이다. 생활비나 집값, 월요일에 열릴 시장, 인간관계, 명성 따위도 그 순간만큼은 부차적인 문제였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저도 글을 쓰거나 글쓰기에 대해 얘기할 때는 그 농부처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행운 말고 달리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안지선 대표가 머리를 안 감고 나와서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며 미안하다고 말하자 아내도 머리를 안 감아서 모자를 쓴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세 사람 중 머리를 감은 사람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이부진 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매일 머리를 감는 걸까,라는 얘기가 나오자 "그 사람은 매일 미용실에 갈 거예요. 아니면 전용 미용사가 집으로 출근을 하든가." "그렇겠죠?" "그럼요." 같은 시답잖은 소리를 주고받던 우리는 가뜩이나 배가 부른데 이차로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와 케이크로 또 과식을 한 후 숨을 헐떡이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날이 추웠지만 마음만은 훈훈했습니다.


(새벽에 깨서 어제 쓴 이 글을 고치고 있는데 안방에서 아내가 불러 갔습니다. 등을 긁어달라고 해서 등을 긁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고양이 순자가 와서 애앵, 하고 울길래 아내의 배 위에 올려놓았더니 몇 번 가르릉거리다가 배를 박차고 뛰어 나갑니다. 저는 이렇게 무람한 시간이 참 좋습니다. 아내에게 좀 더 자라고 하고 마루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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