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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23. 2023

엄청난 대사의 향연! 경마장 가는 길

장선우의 《경마장 가는 길》리뷰


아내가 넷플릭스에서 《경마장 가는 길》을 선택해서 같이 보고 있다. 일단 대사들이 너무 뛰어나다. "안 하면 안 돼요? 지금 꼭 해야 돼요?"라거나 "저도 가끔은요......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결혼이 하고 싶다구요." 같은 강수연의 대사는 그녀의 적당히 계산된 어리숙함을, "그래, 생각해 보았느냐?" "그렇게 말하는 너의 이데올로기는 뭐냐?" 같은 문성근의 대사는 재수 없는 인텔리겐차의 찌질함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문성근의 문어체 대사 구사력은 놀라운 수준이다.


아내는 영화를 보면서 "가스라이팅 장난 아니네."라고 혀를 찬다. 지금 보니 그런 게 명백하게 보이는데 어렸을 땐 그저 새롭게만 보였던 모양이다. 제대를 하고 한창 영화를 보러 다니던 대학생 시절, 이 영화를 보면서 극장에서 받은 리플릿에 실렸던 장선우 감독의 요사스러운 명문에 전율했다. 같이 영화를 봤던 뚜라미 후배 현경이가 "이 사람 뭐야? 왜 이렇게 글을 잘 써?"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지금 보니 하일지가 원작은 물론 각색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하일지 작가는 미투 때 좀 시끄러웠다가 무혐의 처리된 된 바 있고 장선우 감독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너무 크게 망하는 바람에 재기를 못하고 있다. 어쨌든 한때를 풍미했던 영화였고 새로운 영화가 쏟아지던 1990년대의 기운이 느껴지는 영화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강수연의 신작 《정이》가 화제가 되면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연상호 감독에게도 고맙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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