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캠 '썸씽 로튼' 티켓 당첨기
현충일 저녁, 고양이 순자 생일이라고 낮에 놀러 왔던 친구들도 돌아가고 마트에서 사 온 닭가슴살과 금방 담근 겉절이에 술 없이(!) - 6개월 간 금주하기로 했으니까 - 건전하게 저녁밥을 해치운 우리 부부는 설거지를 마친 뒤 TV를 끄고 충동적으로 라디오를 틀었습니다.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틀어놓고 거실에 누워 각자 빈둥거리고 있는데 배철수 씨가 뭔가 퀴즈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공연하는 무슨 뮤지컬에 들어가는 곡을 틀어주면서 어느 영화에서 이 노래가 나왔는지 알아맞히면 다음 주 토요일에 그 뮤지컬을 볼 수 있는 티켓을 두 장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라디오를 무심코 흘려듣던 저는 뮤지컬 공연 제목도 모르지만 들려오는 노래가 '레 미제라블'에서 나온 것만은 알 수 있었습니다.
남편 : 여보, 정답이 레 미제라블인데?
아내 : 그럼 보내봐.
남편 : 에이. 어디다 보내는지도 몰라.
아내 : 못 들었어?
남편 : 샵 8000번이라고 하긴 했는데...확실친 않아.
아내 : 혹시 알아? 그냥 보내봐.
남편 : 그럴까...?
저는 긴가민가 하면서도 휴대폰을 열고 문자 메시지를 작성했습니다. 이럴 땐 최대한 티켓을 수령할 명분이나 사연이 있어 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창피하지만 얼마 전 회사 그만둔 얘기를 써먹기로 했습니다.
"정답 '레미제라블'이죠? 아내와 함께 이 뮤지컬을 보고 싶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회사를 그만두었거든요. 그래서 문화비를 좀 줄여야 한다고 아내가 우울해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영화보다 뮤지컬, 멋지지 않습니까?"
열심히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아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아내 : 정답만 보내지 말고 밑에 뭐라고 써서 보내야 해.
남편 : 응, 안 그래도 당신 좀 팔았어. 나 회사 그만둔 얘기도 쓰고...
아내 : 에휴, 못살아.
잠시 후 문자 메시지로 답장이 왔습니다. 6월 15일 토요일 7시 '썸씽 로튼' 티켓 두 장이 당첨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막장 드라마에서는 착한 년보다 불쌍한 년이 이긴다더니. 역시 우는 소리는 할 만하더군요.
여보, 우리 당첨됐대! 내가 낄낄 웃으며 아내에게 소릴 질렀더니 아내가 "아, 이렇게 앵벌이 인생 시작하는 건가?" 하면서 껄껄 웃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이후엔 아마 처음일 거예요. 상품 타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