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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30. 2023

생각도 음식도 천천히 쌓이는 것임을 생각하게 한 북토크

윤혜자의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 북토크

"북토크에서 밥을 하는 경우는 아마 없을 거야."

윤혜자는 작가는 뛰어난 작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기획자입니다. 이미 수많은 책과 행사를 기획했고 지리산에서 일박이일로 수업을 열어보자는 아이디어로 '고은정의 제철요리교실'을 기획하거나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한국 소설을 읽고 술을 마셔보자는 생각으로 '독하다 토요일' 같은 행사를 탄생시켰으니까요. 이번 프루스트의서재에서 열린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 북토크'도 동네 친구인 오보나 씨의 제안과 박성민 대표의 허락으로 시작되었지만 서점으로 솥을 들고 가 직접 밥을 지어보자는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윤혜자의 것이었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금요일 저녁 여섯 명의 북토크 신청자와 윤혜자, 오보나, 박성민, 편성준 등 열 명이 신금호역 근처에 있는 프루스트의서재에 모였습니다. 행사는 공지 30분 만에 마감되었는데 이는 숭문고등학교 다니던 아들들의 학부형으로 만난 분들의 독서모임에서 단체로 신청을 하는 바람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좀 다양한 분들에게 기회가 돌아갔다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아쉬움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중에 제가 서울시민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할 때 시민기자로 참석한 김난숙 선생도 계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윤혜자 작가는 두 가지 쌀을 꺼내 밥을 지으며 책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북토크 행사 소식을 들은 '이천미감'에서 참가자들에게 선물로 주라며 진상과 고시히카리 두 가지 쌀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함께 가져간 무쇠솥과 스테인리스솥에서 흰쌀밥과 두릅밥이 익어가는 동안 윤 작가는 왜 자신이 장을 담그고 밥 하는 방법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쌓이는 것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나 반찬은 그대로 우리 몸에 쌓이게 됩니다. 그래서 좀 비싸더라도 계란이나 식용유, 쌀 같은 식재료는 좋은 걸 먹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태리, 프랑스 등 서양 요리를 배우다가 결국 한식에 정착하게 된 사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밥상에 혁명이 일어나려면 장을 담가야 한다는 것과 김치를 담금으로써 생활이 얼마나 달라지는지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당장 저희가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과 한옥으로 이사를 가게 된 이유도 장독대의 필요성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은 탄수화물을 너무 두려워 말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다만 밀가루는 안 먹을수록 좋습니다. 하루 세끼를 꼬박 먹어야 하나 하는 문제도 제기했습니다. 밥 하고 상 차리고 설거지하는 것도 시간과 힘이 필요한 노동이거든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회사를 그만둔 후 하루 두 끼만 먹는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아침 겸 점심을 11시에 먹고 저녁을 조금 일찍 먹는 식으로요.


다들 살림을 30년 이상 한 고수들이었지만 밥 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았습니다. 밥 냄새가 너무 좋다고 하면서 함께 가져간 장흥의 무산김과 간장으로 맛있게 식사를 했고요. 가장 좋아한 사람은 박성민  대표였습니다. 맛있게 밥을 먹었고 남은 반찬도 서점에 받아 주셨습니다. 참가자들은 매대에 나란히 놓인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와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중 윤혜자의 책만 사서 저자 사이을 받았습니다. 저는 박 대표에게 제 책이 아주 안 팔리는 책은 아니니 오늘 안 팔리더라도 마음 놓으시라고 하며 웃었고요. 이름 그대로 '혜자스런' 북토크였습니다. 참가자들은 윤혜자가 나눠주는 이천미감의 포장쌀을 가져가며 기뻐하셨습니다. 윤 작가는 싱싱하고 맛있는 것부터 먹어야 인생이 즐겁다며 집으로 돌아가면 그 쌀부터 먼저 드시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 저희는 솥과 밥그릇, 수저, 부르스타 등 가져갔던 식기와 도구를 모두 챙겨 택시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오보나 씨의 남편께서 원격으로 카카오택시를 불러 주셔서  아주 편하게 왔습니다. 윤혜자 작가는 "밥을 하는 북토크는 너무 번잡하고 힘들어서 이제는 하지 말아야겠다."라며 웃었지만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누가 부르기만 하면 또다시 책과 솥을 양손에 들고 달려갈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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