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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19. 2023

돈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우리 마을 사설 도서관 ‘석천문화관’

성북동 경신고등학교를 지나 혜화동 로터리로 가는 길엔 묘한 건물이 하나 있다. 가정집 같이 생겼는데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주민을 위한 작은 도서관’이라 작게 쓰여 있다. 오늘 아내와 함께 그 길을 걷다가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잔디밭이 붙은 현관이 있었고 안에는 도서관 직원 여성 두 분이 계셨다. 그리고 책꽂이엔 옛날 어린이 그림책부터 세계명작소설, 우리나라 소설들이 빼곡했다. “최인호의 『가족』도 있어. 저런 책은 이제 구하기 힘들지 않나?” 하고 아내가 김탄했다.

이 도서관을 세운 분이 누구냐고 물으니 고려제강 회장님 댁이었는데(인터넷을 찾아보니 석천은 고려제강 홍정열 전 회장의 호였다) 도서관으로 개조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종로구와 성북구 거주자라면 회원으로 가입해 책을 빌릴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환호작약하며 회원 가입 원서를 작성하고 직원분이 회원증을 만드는 동안 2층으로 올라가 다른 책들을 구경했다.

회원증을 받고 책을 한 권 빌리면서(서울여대도서관에서 읽다가 반납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빌렸다) 혹시 책 기증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깨끗한 책을 가져오면 내부에서 판단해 받거나 다른 곳에 기증을 한다고 했다. 아내가 ‘우리 책도 기증을 하자’고 내게 말하는 걸 듣고 직원분이 ”작가님들이시구나.”라고 하자 아내가 ”작가는 아니고요...”라며 말끝을 흐렸고 나는 “아니, 책을 냈으면 작가지. 무슨 소리야.”라며 속없이 그녀 편을 들었다.


책을 들고 나오며 다시 한 번 도서관을 바라보았다. 돈은 이렇게 쓰는 거야, 라고 집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내는 앞으로 좀 더 폼나게 살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말했고 나는 그러려면 먼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 그래 보자고 서로를 격려하며 마을 신호등을 건너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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