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Jun 02. 2023

대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노는 부부’의 하룻밤

유튜브 대덕밸리 라디오에 출연한 이야기

‘대덕밸리라디오’라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왔다. 평생을 방송 작가로 살아왔고 방스미디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방성예 대표가 아내와 나에게 전격적으로 출연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이 인연이 되어 만난 방 대표는 방송 활동 외에 여성이 주도적으로 캠핑을 하는 일명 ‘맘캠퍼’로도 활약 중이다. 책쓰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캠핑 이야기는 우리들의 흥미를 자극했고 급기야 방 대표가 주말에 워크숍 멤버들을 초대해 ‘접대캠핑(몸만 가면 텐트부터 먹을 것까지 일체를 제공해 주는 황제캠핑)’을 시켜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방송 출연은 그 연장선 위에 있었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대전에서 생활했던 아내는 자신이 이곳을 떠난 게 벌써 30년이 되었다며 택시 안에서 감회에 젖었다.


페이스북 친구로만 알고 지내던 최순희 PD님(대전MBC 출신이다)의 환대로 맛있는 저녁을 먹고 8시부터 방송을 진행했다. 아내와 어디 나가서 이렇게 함께 책 얘기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부부가 둘 다 놀게 된 사연을 비롯해 성북동의 작은 한옥집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 살아갈 계획(계획을 좀처럼 세우지 않지만) 그리고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자세까지 티카티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술집에서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간헐적으로 술을 끊는 습성까지 술과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누었다. 물론 가장 많이 한 건 글쓰기와 책 이야기였다. 나는 ‘글을 쓰면 삶이 변하고 책을 쓰면 사람대접이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방송을 지켜보던 대덕밸리TV의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이 열렬히 박수를 쳐주었고 유튜브 라이브에 들어온 친구와 지인들의 댓글 참여 격려도 고마웠다. 방송이 끝나고 아내와 내가 책에 싸인을 해드리고 있는데 스태프 중  한 분이 “군대 간 아들이 아빠에게 보내온 책이에요.”라며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찍은 사진을 내밀어 보여 주셨다. 깜짝 놀랐다. 뭐 이런 세련되고 똑똑한 군인이 다 있단 말인가.

숙소인 모텔로 돌아온 아내는 “그냥 잘래, 나가서 뭐라도 먹으며 한 잔 할래?”라고 물었다. 당연히 나가서 한 잔 하자고 대답했다. 나는 밤이 되니 기침이 다시 나왔다. 일주일 전에 목감기에 걸렸는데 아직도 기침이 나온다. 이번 감기는 참 오래간다. 밖으로 나가보니 계룡스파텔이 보이는 모텔촌에서 먹을 수 있는 건 전과 회 두 가지였다. 우리는 홀이 넓고 손님도 많은 갯마을횟집으로 들어가 모둠회와 소주를 시켰다. 소주는 셀프라고 해서 냉장고에 가보니 선양소주가 병이 예뻤다. 모둠회는 비닐도 벗기지 않은 무채 위에 얹혀 나왔는데 너무 맛이 없었다. 세제 섞은 물에  회를 빨아서 일부러 맛이 없게 만들지 않으면 나오지 않을 맛이었다. 아내가 나를 보고 말했다. “맛이 종잇장 같지 않아?” 대실패였다. 우리는 화를 내며  선양소주를 마셨다. 선양은 병만 예쁘지 도수가 너무 약해서 다시 참이슬프레시로 바꾸었다. 옆 테이블에 남성 둘 여성 하나 손님들이 들어오길래 아내가 작은 묵소리로 ”모둠회 시키지 마세요!”라고 알려 주었고 그들은 고마워했다. 매운탕을 하나 시켜서 회를 데워 먹었다. 계산을 하면서 회 맛이 이상하다고 했더니 광어만 숙성을 시키고 다른 회는 들어오는 대로 내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얘기하면 뭘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텔로 돌아와 허탈한 마음으로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에 화장실에 다녀왔다가 다시 잤는데 6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둘 다 사우나에 가기로 했다. 계룡스파텔은 내일 가기로 하고 오늘은 모텔 옆에 있는 경하온천호텔의 목욕탕으로 갔다. 두 사람 합쳐 만사천 원이었다. 목욕탕은 낡았지만 깨끗한 편이었고 물이 좋았다. 나는 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어가 배변을 했다. 새벽 목욕탕은 한가해서 좋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목욕탕에 가면 항상 존재하는 탕에서 “으아~어” 하고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가 있어서 잠깐 웃었다. 샤워를 하고 사우나에 들어가고 탕에도 들어가고 하며 한 시간을 놀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아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 메모장을 열고 일기를 쓰고 있는데 아내가 들아오더니 일층에 토스터기가 있는 것 같으니 가보라고 했다. 뭐라도 늘 아침을 먹어야 하는 나를 위해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 층으로 내려가 카운터에 있는 여성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입구 옆에 있는 토스터기에 식빵을 두 개 넣었다.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받으며 보니 기계 위에 봉지에 담긴 스프가 있길래 하나 타서 숟가락으로 저어 맛을 보았다. 어릴 적 먹은 오뚜기스프 맛이었다. 나는 스프는 하나만 가져 가기로 하고 토스트를 플라스틱 접시 위에 놓으며 옆에 있던 반으로 자른 바나나도 헝겁가방에 넣었다. 그때 모텔 사장님이 오시더니 “아유, 바나나도 있는데 제가 안 가져다 놓았네요.”라고 말하며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바나나 두 조각 있던 거 제가 챙겼는데요?”라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얼른 오 층으로 올라왔다. 뭔가 좀 챙피했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의 내가 더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