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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17. 2023

두 권이 되어버린 소설책 이야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두 번 샀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우리 집에 두 권 존재하게 되었다. 어제 강서도서관에 가서 도서관 슬로건 심사를 했는데 초행길이라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오지은 사서의 안내를 받아 가져간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또 다른 심사위원인 한국독서지도연구회 임은정 선생이 오실 때까지  나는 앉아서 책을 읽었다. 다음날인 토요일에 '독하다 토요일'에서 이 책을 다루기로 했기 때문이다. 잘 생긴 남자 위컴이 선입견을 심어주는 바람에 다아시가 오만하고 못되다 생각했던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게 청혼을 받고 당황하는 장면까지 읽었을 때 강서도서관 조은숙 과장님과 오지은 사서가 오셨다. 나는 도서관이 너무 멀어서 조금 망설였지만 그래도 '도서관에서 하는 행사는 되도록 참여하자'라는 평소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왔다고 말씀드렸고 두 분은 그런 내 마음을 헤아려 고마워해 주셨다.


우리는 약 한 시간 반에 걸쳐 20개의 후보 안 중 세 개의 슬로건을 고르고 임은정 선생이 행운상 추첨을 하는 동안 나는 심사 경위서를 썼다. 조은숙 과장님은  경위서의 내용보다 내 글씨에 더 관심을 보이셨다. 마치 캘리그라피 같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처가의 캘리'를 쓰다 보니 글씨가 조금 늘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인스타그램에서 공처가의 캘리를 찾아 보여드리기도 했다. 임은정 선생은 내가 쓴 책들과 글쓰기 강연, 책쓰기 워크숍 등에 대한 얘기들을 듣고서 "작가님을 미리 만났더라면 지역 주민들을 위한 강연 의뢰를 벌써 여러 번 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셨고 나는 앞으로 뜻있는 일에 불러 달라는 말씀으로 화답했다.


심사를 마치고 임은정 선생과 함께 전철역으로 가서 헤어졌다. 서로 반대 방향이었다. 사당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며 바로소 가방이 좀 가볍다는 생각을 했다. 가방을 열어보니 소설책이 없었다. 조 과장님이 오셨을 때 읽던 책을 의자 위에 놓았는데 과장님이 그걸 옆으로 미뤄 놓던 장면이 떠올랐다. 책을 심사위원실에 두고 온 것이었다! 갑자기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도 내일까지 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 큰일이다. 도서관으로 전화를 했더니 오지은 사서가 받았다. 책을 찾아보겠으나 오늘 보내 드리기는 힘들 것 같고 월요일에나 우편으로 보내 드릴 수 있을 것이라는 불운한 소식이었다. 당장 내일 이 책이 필요한데. 고민을 하다가 혜화역에 내려 성대앞 알라딘으로 갔다. 오만과 편견을 검색하니 민음사판은 없었고 다른 책들이 있었다. 나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얼굴이 크게 붙어 있는 현대문화판을 오천 원 주고 샀다. 아마 영화가 개봉될 때 출간된 판본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사실 나 야단맞을 일이 있는데."라며 책을 두고 온 사실을 고백했다. 아내는 "그럼 나는 그 책을 오늘 읽을 수가 없는 거군!"이라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럴 리가!"라며 새 책을 가방에서 꺼내 보였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자 아내는 한숨을 내쉬며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라며 용서를 해주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소설을 마저 읽었다. 엘리지베스의 동생 리디아와 위컴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고 결혼에 골인하는 과정에서 다아시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하는 엘리자베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으며 두 사람의 연애를 방해하려는 캐서린 영부인의 말과 행동이 오히려 두 사람을 도와주게 되는 대목에서는 통쾌함을 느꼈다. 이백 년 전이기는 하지만 청춘 남녀의 연애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 최대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과는 달리 손을 잡거나 키스도 하지 않고도 사랑이니 청혼이니 하는 중대사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책을 다 읽고 뒤에 붙은 작가 연보를 세세히 읽으며 제인 오스틴의 생애를 잠깐 상상했다. 이렇게 연애에 밝고 입담이 졸은 작가가 결혼을 하지 않고 생에를 마감한 일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27세 때 청혼을 받고 허락했다가 이튿날 아침 거절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아내와 함께 봤던 브론테 자매들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웨이스티드(Wasted)》도 생각났다. 책 뒷면엔 '지난 천 년 간 최고의 문학가를 뽑는 영국 BBC의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제인 오스킨이 2위를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제인 오스틴의 이러한 우수함은 우리 집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그녀의 소설 중 똑같은 작품을 두 권이나 소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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