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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4. 2023

오랜만에 극장에서 울었다

연극 《우리 읍내》리뷰

무대 세트는 극도로 단순하다. 영화로 치면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처럼 최소한의 선과 구역만 남은 형국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아예 '무대감독' 캐릭터가  직접 등장해 극의 전체 흐름을 설명하기까지 하다니 극이 이렇게 친절해도 되나 생각하다가  3부 ‘죽음’ 파트에 가서는 결국 눈물을 쏙 뺐다. 농인인 현영이 다시 이승으로 잠깐 돌아가 평범한 날의 식구들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너무 안타까웠고 급기야 인생 별 거 없구나,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지 하는 순진한 생각까지 들게 했으니까. 배우는 물론 관객까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건 우리가 이미 연극적 약속(Threatrical convension)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손턴 와일더의 1938년 초연 희곡이 우리나라에서 연출가 임도완에 의해 1980년대 경북 울진군 평해 읍내로 바뀐 것과도 같은 이치다.


인물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로 바뀌면서 연극은 더욱 친밀해졌고 배우들의 연기도 고르게 다 좋았다. 나는 특히 대사에 농인들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그러니까 너는 농인이라 힘들겠구나, 라든지 쟤는 농인과 사귀네, 같은 얘기가 전혀 없이 그냥 현영이나 효근이를 등장인물 중 하나로만 치는 무심한 태도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 읍내에서 장애인들이 섞여 있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태도라는 이런 기본 인식은 자막, 음성해설, 공연수어통역 등 장애인 관객을 위해 마련한 여러 '베리어 프리' 장치들과 부딪히며 묘한 감동을 불러온다.


우리는 왜 연극을 보는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남의 삶을 경험하고 거기서 인생의 본질과 다양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이 연극은 성공적이다. 어쨌든 나는 오랜만에 극장 안에서 따뜻한 눈물을 흘렸다. 연극이 끝나고 아내는 앞부분이 너무 친절하고 지루해서 좀 졸았다고 투덜댔지만 그녀 역시 내 손수건을 빼앗아 가 눈물을 닦았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6월 25일, 내일까지만 상연한다.  그러나 아쉬워 마시라. 이 연극은 '세계에서 하루도 공연되지 않는 날이 없는 공연'이라 불린다. 기다리면 반드시 다시 볼 수 있다. 물론 보고 싶다는 마음과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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