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Jul 08. 2023

고전을 사랑스럽게 각색하는 방법의 예

음악극 《붉은 머리 안》

책이나 애니메이션, 최근엔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반복적으로 탄생하고 있는 영원한 고전 '빨강 머리 앤'이 연극무대에서 제목을 '붉은'과 '안'으로 바꾸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했다. 극장으로 들어가기 전 캐스팅 보드엔 다섯 명 다 안, 안1, 안2...식으로 역할이 쓰여 있어서 잠시 헷갈렸지만 극이 시작되자 금세 의문이 풀렸다. 배우들은 큰 동작의 춤과 율동, 타이밍이 딱 맞는 대사 들을 통해 순진하고도 경쾌하게 안과 매튜, 마릴라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특히 홍나현 배우는 표정부터 목소리, 의상, 액션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로 안 역할에 딱이었다. 이전 오세혁 작가와 함께 했던 뮤지컬 《데미안》에서의 심각한 역할도 잘한다 생각했지만 이번 작품을 보고는 '와, 연기력이 이 정도였어?'하고 놀라게 만든다. 아, 오세혁 작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의 작품에도 나왔던 산울림의 음악이 이번에도 쓰였다. 특히 오프닝에 나오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연극 내용 소개와 관객 환영 멘트로도 활용되었다. 빨강 머리 앤 만큼이나 김창완의 곡들도 고전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각색의 힘이 좋았다. 앤을 안으로 바꾼 것만으로도 '안이에요'와 '아니에요' 같은 언어유희를 만들어 내고 나아가 '안과 밖'이라는 새로운 주제 의식까지 만들어 내는  홍사빈·홍단비 작가는 결국 친절하고도 짜임새 있는 극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홍나현 배우 못지않게 조은진 배우의 연기와 노래도 빼어났고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강은빈 배우의 인기는 무대 밖으로 넘쳐날 지경이었다. 큰 키에 코믹한 연기를 넘어 순식간에 눈물까지 자아내는 김세환 배우, 그리고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역할을 소화해 내는 주민우 배우까지 다섯 명 모두 관객들에게 흐뭇함을 안기는 사람들이었다.


뛰어난 연기와 극본, 연출에도 불구하고 나는 졸려서 몸을 배배 꼬고 살짝 졸았다. 전날 잠을 너무 못 잔 탓이다. 그러고 스튜디오 블루의 객석이 다소 좁아서 옆에 앉은 여자분과 몸과 닿을까 봐 걱정이 되어 자꾸 아내 쪽으로 몸을 붙였다. 아내가 왜 이렇게 몸을 가누질 못 하냐고 핀잔을 주었다. 아내와 연극에게 미안했다. 너무 졸려서 집에 오자마자 양치만 하고 바로 잤다. 추천한다. 대학로 스튜디오 블루에서 8월 27일까지 주요 배역 더블 캐스팅으로 상연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사람이 쓴 한 권의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