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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17. 2023

강연과 독토가 있던,  아주 길고 재미있던 토요일

월요일 새벽에 쓰는 토요일 이야기

그저께는 토요일이었지만 지난주에 이어 '길 위의 인문학' 강연 두 번째 강연을 아리랑도서관에서 하는 날이라 일찍 일어났습니다. 비가 오고 있더군요. 아내가 스크램블드에그와 커피를 준비해 줘서 그걸 먹고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분이 계시길래 지난주 강연에서 인상 깊었거나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었냐고 여쭸더니 자기는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늘 궁금했는데 지난주 제 얘기를 듣고 의문이 풀렸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경험이 적어지기 때문'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인생이 재밌어지려면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야 한다고요. 혹시나 해서 여쭤본 건데 이렇게 뿌듯한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일주일 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뭘 하고 시간을 보내나?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에 이어 이번에는 책을 즐기는 방법, 나아가 그 책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인생을 살찌우는 책과 드라마는 따로 있다는 말씀부터 드렸습니다. 그러니 그냥 습관처럼 tv를 켜 놓는 건 좋지 않다고 하며 며칠 전 이기원 작가가 얼룩소에 쓴 칼럼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아무 거나 무턱대고 보는 것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여러 번 보는 게 훨씬 낫다고요.   

리뷰를 쓰는 것이야말로 책을 적극적으로 읽고 활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제가 그동안 쓰던 리뷰 노트 세 권을 꺼내 보여드렸습니다. 저를 아리랑도서관에 소개해 주신 이명규 선생께 "지난주에 강냉이를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 분은 닉네임이 '반디'인데 블로그 이름을 물어보니 '블룸오아낫'이라고 하시더군요. 어제 아침에 네이버 블로그에 가서 글을 읽고 이 선생이 찍은 제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제 책에 싸인을 하고 있는데 아까 강연 직전 제게 고마운 말씀을 해 주신 분이 다시 오시더니 오늘도 '내 안에 다 들어 있다'라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뭘 자꾸 배우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어떤 일을 십 년 이상 한 분이라면 이미 자기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걸 찬찬히 꺼내기만 하셔도 충분합니다."라고 말씀드렸거든요. 이렇게 강연 피드백을 즉시 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저는 참 운이 좋은 강연자라는 걸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조진순 관장님, 배진주 사서 두 분과 함께 점심을 먹고 서둘러 아내와 함께 을지로3가로 갔습니다. '독하다토요일' 행사를 책방느티에서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카페에 가보니 오송에서 온 혜영 씨가 먼저 도착해 있더군요. 우리는 3층으로 올라가 예약석에 앉았고 이어 기홍 씨, 효성 씨, 재희 씨 등 멤버들이 속속들이 도착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읽은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였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지만 오래전에 읽었으므로 새 작품 읽는 기분이었고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재희 씨는 전체적으로는 ㅈ좋았으나 산티아고의 존재증명 의도가 너무 보여서 좀 불편했다는 의견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헤밍웨이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처럼 직선적이다'라는 생각을 말했습니다. 혜자 씨는 이 작품이 말년 헤밍웨이의 존재 증명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며 "오늘 죽어도 상관없어"라고 혼잣말을 하는 산티아고는 우울증을 앓고 있던 것처럼 보인다며 그런 사람의 심정을 상상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미경 씨는 산티아고가 자신의 배보다 큰 청새치를 잡은 것은 '운명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라는 메타포이며 물욕보다는 명예에 집착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품위 있는 가난' 캐릭터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성희 씨는 이자람의 공연 《노인과 바다》를 보고 너무 좋아서 헤밍웨이의 단편집을 다시 주문했다고 했습니다. 혜영 씨는 책을 읽으며 '이쯤 되면 잡을 것 같은데 안 잡히네...'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가던 도중 목숨을 걸고 자기 증명을 하는 산티아고를 보고 걱정이 되어 작가 연표를 살퍄보니 자살을 했더라고 해서 모두를 웃겼습니다. 전에도 무슨 작가 얘기를 하며 이 사람 이상하다고 했더니 자살을 했더라고 해서 다들 웃었거든요. 항상 자신은 얘기할 게 없다고 하면서 결국 끝에 가서 길게 예기를 길게 하는 기홍 씨가 그날도 길게 얘기를 했습니다. T.S 엘리옷의  「황무지」가 나오던 그때는 전쟁이 끝나고 모두 황폐해져 인간이란 무엇인가, 를 묻던 대공황의 시대였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고전에 의지하고 싶어 하지만 또 시대는 현대니까 자아가 필요하고... 그럴 때 산티아고 같은 자아탐구형 인간이 나타나니 반가웠던 거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여러모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소설이었다는 것이 기홍 씨의 의견이었습니다. 전쟁 얘기가 나오자 혜자 씨가 그 전날 봤던 연극 《1923년 조선인 최영우》 얘기를 하며 '나는 최소한 자기 결정권이 있었는데 예전 불운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얼마나 사는 게 힘들었을까'를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앉아 있는 카페느티 3층은 소리가 울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전 북토크 때 같은 독립성을 원했지만 바람과는 달리 시끄러운 자리에 앉게 된 것이었죠. 결국 모임을 빨리 마치고 예약해 놓은 안동장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을지로의 유명한 중국음식점인 안동장에 가서 탕수육과 맥주, 연태고량주 등을 시켜 먹으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메뉴 선정에 일가견이 있는 동현 씨가 업무 관계로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전화로 뭘 시킬까 물어보니 거기는 짜장삼결살찜이 유명하다고 해서 그걸 시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시킨 건 '야채와삼겹살지짐'이었습니다. "이거 주세요"라고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짱장삼겹살 위에 있는 메뉴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음식은 맛이 있었고 동현 씨가 온 뒤 다시 시킨 짜장삼결살찜 등의 안주가 빛의 속도로 없어지는 바람에 저는 볶음밥도 하나 시켜 안주 삼아 먹었습니다. 실컷 수다를 떨고 일어나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지만 몇몇 사람은 미련이 남아 다시 을지로3가를 헤매다 결국 을지로골뱅이에 들어가 골뱅이와 계란찜, 생맥주를 시켜 먹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아름 씨가 남자친구 얘기를 꺼내자 기혼자인 기홍 씨와 싱글인 동현 씨, 저까지 모든 남자들이 나서서 '남자라는 동물은 하나하나 다 얘기를 해주지 않으면 절대 알지 못하는 존재'임을 역설하며 낄낄댔습니다. 배가 너무 불렀지만 이야기가 재밌어서 계속 맥주를 시키고 계란말이를 반복 주문했습니다. 여기는 계란말이 리필이 되는 곳이었거든요. 밤이 깊고 배가 꽉 찬 상태가 되어서야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아주 길고 재밌었던 토요일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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