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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26. 2023

일주일에 하룻밤만 한 이불을 덮는 부부

켄 리우 단편 「장거리 화물 비행선」

제가 아는 분 중에 중국에 가서 박사학위까지 하고 편의점을 운영하는 분이 계십니다. 박규옥 선생은 이 이야기를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라는 책에 담았는데(드라마로 만들기로 결정되었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주 인간적이고 재미있습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편 이승모 선생과 함께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 선생은 '그렇게 부부가 함께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힘들지 않으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답니다. "하루 2교대이기 때문에 근무가 끝나고 남편에게 15분 정도 인수인계만 하고 나면 저는 자러 갑니다. 그러니까 남편과 함께 있어야 하는 시간은 하루 15분 정도인 거죠." 그러면 사람들은 그렇게 좋은 근무 조건이 또 어디 있느냐며 반색을 한다고 합니다.


똑같은 이야기가 켄 리우의 SF 단편 「장거리 화물 비행선」에도 나옵니다. 압축 가스로 둥실 떠서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화물선 '페이마오투이'는 보잉747보다 높고 길지만 훨씬 가볍고 연료비가 거의 들지 않아서 운송업계의 개인 사업자 같은 역할을 하죠. 중국 란저우에서 미국 라스베이거스까지 화물을 운송하는 긴 여정이므로 조종사이자 선주인 아이크와 그의 아내 예링처럼 부부 조종사 팀이 흔합니다. 6시간 단위로 교대 근무를 하며 한 사람은 비행선을 조종하고, 그동안 다른 사람은 잠을 자는 식이죠. 그래서 두 사람은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 안에서 함께 머물지만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건 일주일에 하룻밤뿐이라고 웃으며 말합니다. 여섯 시간씩 떨어져 지내다 보면 결국엔 5분짜리 토막 대화를 하는 요령도  생긴다고 하죠.


"가끔은 서로 다툴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예링은 내가 여섯 시간 전에 했던 말을 어떻게 받아칠지 생각할 여유가 여섯 시간이나 생기는 셈이죠. 예링은 아직 영어 실력이 완벽하지 않아서 그런 연습이 도움이 돼요. 필요한 단어가 있으면 그 시간 동안 찾아볼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일어나면 예링은 나한테  5분 동안 할 말을 하고 자러 가고, 그러면 나는 예링한테 들은 말을 다음 여섯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우린 며칠에 걸쳐 말다툼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어요."


가까운 미래를 다룬 것 같기도 하고 19기 말이나 20세기 초 스팀펑크 같기도 한 이 이야기는 워싱턴 DC에서 '새천년 청정에너지법'이 통과된 이후 화물 비행선 업계가 난데없는 호황을 맞게 된 가상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의 경쟁 기업에 맞서 자국의 생산자를 보호하고 환경 운동 진영의 로비를 잠재울 목적으로 운송 수단의 탄소 발자국을 기준으로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다는 설정이죠. 이렇게 합리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비행선 안에서 근무하는 부부의 일상과 심리까지 깨알 같이 잡아내는 걸 보면 켄 리우는 정말 대단한 소설가입니다. 이 소설은 그의 단편집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에 실려 있는데 이 작품 말고도 살인 로봇, 위성 식민지 개발, 컴퓨터 속으로 들어간 영혼, 기계 팔을 달게 된 곰 이야기 등등 흥미진진하고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SF 단편들이 가득합니다. 읽다 보면 선배 작가 테드 창의 소설 제목을 작품 속에 녹이게 된 이야기도 작가의 설명으로 만날 수 있으니 당대 SF소설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어서 사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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