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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30. 2023

희극으로 풀어낸 가부장제의 비극

연극《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남편이 죽었다고 창문까지 꼭꼭 걸어 잠그고 다섯 명의 딸들에게  8년 동안 수를 놓으며 상을 치르게 하는 어머니는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그런 세계가 가능하다. 더구나 1930년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마을을 다룬 희곡에서라면. 베르나르다 알바는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가 갑자기 죽어버리자 집안의 가장이 되어 철권을 휘두른다. 이미 노처녀에 돌입한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부터 막내 아델라에 이르기까지 딸들이 남자를 함부로 만날 수 없도록 훈계하고 철저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가부장제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곧바로 가해자로 돌변한 된 것인데, 이는 못된 시어머니 밑에 있던 며느리가 더 못된 시어머니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이 가진 슬픈 속성 중 하나다.


그런데 억압이 계속되면 결국은 터져버리는 법이다. 아버지의 유산을 거의 독차지하게 된  큰딸 앙구스티아스의 돈을 노리고 로마노라는 젊은 청년이 청혼을 해오자 큰딸 앙구스티아스는 물론 다른 딸들도 신이 난다. 억압된 욕망이 욕정으로 분출된 것인데 어차피 앙구스티아스를 사랑해서 청혼을 한 게 아니었으므로 로마노 역시 자신에게 육탄돌격하는 자매들을 내칠 생각이 전혀 없다. 연극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그는 밤 열한 시, 새벽 한 시, 새벽 세 시 등 시간을 나눠가며 자매들과 섹스를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베르나르다 알바가 걱정하는 건 마을에 소문이 퍼지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진실보다 타인의 평가애 목을 매는 건 '나는 옳다' 또는 '바르게 살아왔다'라는 기만이 얼마나 웃기는 삶을 만들어 내는지 보여주는 알레고리가 아닐 수 없다.


평소 연극이 심각하거나 어두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문삼화 연출은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쉽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엄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폭력에 두려워하다가도 곧바로 저항 모드로 돌아서는 딸들의 표정과 대사가 그렇고 미친 할머니 역을 남자 배우에게 맡기고 하녀에게 "할머니 아랫도리가 이상해"라는 대사를 하게 한 것도 웃음을 자아내는 포인트다. 액자를 걸 때마다 나오는 음향도 좋았고 마지막에 하녀 폰시아의 손녀에게 영매 역할을 맡긴 것도 빼어난 아이디어였다. 다른 식구들이 다 죽은 집에 여전히 살아 있는 할머니의 존재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아마도 이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할머니처럼 미쳐야 한다는 것 아닐까. "할머니, 빨리 죽어. 벌써 162살이잖아."라는 대사는 이 연극이 비현실임을 각성시키는 귀여운 주문처럼 들렸다. 대학로 물빛극장에서 일요일인 오늘까지 상연한다. 실망하지 마시라. 이 연극은 뮤지컬로도 연극으로도 심지어 영화로도 계속 만들어질 테니까. 나도 다음엔 뮤지컬로 한 번 더 볼 생각이다.


(*인터넷으로 원작자 이야기를 찾아보니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 때 처형되었다고 한다. 1931년부터  ‘라 바라카’라는 극단을 창설하고 연극을 쉽게 볼 수 없는 민중을 위해 순회공연을 다니던 그는 동성애자, 집시 옹호자라는 이유로 국민전선 사령관에 의해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된 것이다. 파시즘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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