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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07. 2023

지방 예술극장에서 만나는 연극의 각별한 맛

극단 골목길의 《경숙이, 경숙아버지》

아내가 주말에 연극을 보러 동해에 가자고 했다. 박근형 연출이 이끄는 극단 골목길의 《경숙이, 경숙아버지》 공연을 예매해 두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승연 배우와 친한데 이번에 승연이 이 연극에 처음으로 합류했으니 동해에 가서 연극도 보고 배우들과 어울려 회도 한 접시 먹고 올라오면 좋지 않겠냐는 게 아내의 의견이었다. 아내나 나나 그동안 너무 여행을 못해서 일박이일이라도 어디 좀 갔다 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KTX를 타고 묵호역까지 가서 쫄면순두부를 먹고 동해문화예술회관으로 갔다. 이 연극은 ‘문예회관과 함께 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주, 부산 등지를 찍고 동해까지 올라온 공연인데 공연장인 예술회관은 이 동네 주민들이 다 모인 듯 아주 흥겹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로비 의자에 깊숙이 몸을 넣고 앉아 있는 박근형 연출을 발견하고 “안녕하세요? 이승연과 전에 뒤풀이 자리에서 뵌 적 있어요.”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내가 얼마 전 회갑연도 축하드린다고 했더니 언제나처럼  너무나 수줍어하시며 낮은 자세로 인사를 받았다.


이 연극은 한국전쟁과 그 이후를 배경으로 가부장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을 동시에 지닌 ’ 배가본드’ 경숙이아버지와 경숙이, 그리고 그의 아내를 중심으로 한 집안과 현대사가 어떤 식으로 엮이고 어긋나는지를 웃음과 눈물의 쌍곡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나치게 크고 벙벙한 극장 무대 상황과 대부분이 연극 공연에 익숙지 못한 관객들임에도 불구하고 경숙 역의 안소영과 아버지 역의 서동갑, 그리고 엄마 역 고수희의 연기는 빛이 났다. 그 밖에도 캐릭터를 위해 대사 내내 헛기침을 해야 했던 꺽꺽아제 역의 성노진 배우, 술집 여인 자야 역을 아주 인간적으로 보여준 이승연 배우, 일인다역을 소화해 낸 이호열 등 베테랑들의 열연이 객석을 울리고 웃겼다.


객석에선 아침마당 방청객을 능가하는 리액션(아이구 저런, 어떻게!)을 구사하는 분들은 물론 공연 중간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는 분까지 다양한 관객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런 건 지방공연 특유의 고난 기본값 아니겠는가. 배우들의얼굴에서 그런 여유와  자부심이 느껴졌다. 지방 예술극장에서 만나는 연극의 각별한 맛은 이런 것이다.


극단의 대장인 이호열 배우의 멀티 연기가 많은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후반부에 그가 예수로 나타나 ‘데우스엑스마키나’를 시전 할 때 서로 미워할 법도 한 처첩과 그의 딸까지 성령이 충만해 오열하는 장면은 단연 연극의 백미였다.


연극이 끝나고 뒷문 쪽으로 가서 이승연을 비롯한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성노진 배우가 이따 저녁 공연 끝나고 소주 한 잔 하자고 해서 그러지고 하고 우리는 숙소에 와서 좀 쉬기로 했다. 이제 빈둥거리다가 승연의 카톡을 받은 뒤 저녁에 뒤풀이 자리로 갈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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