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고선웅의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by 편성준


관객은 묻는다. 남의 집안 복수를 위해 늦게 얻은 제 어린 제 자식을 죽이고 다른 아이를 이십 년이나 키워 기어코 복수를 하게 만드는 사람이 제정신일까? 연극은 대답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때때로 인생이 그렇다. 살아가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숱하게 일어난다(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결국은 내가 해야 할 때도 생긴다. 개인적인 복수든 많은 이들이 바라는 정의를 위해서든.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진나라 대장군 도안고에게 역적으로 몰려 멸족당한 재상 조순 등 300명의 원수를 갚으려고 극적으로 살려낸 가문의 마지막 핏줄 조씨고아와 그의 가짜 아버지이자 조씨 집안의 한낱 문객이었던 시골 의사 정영의 이야기다. 이런 지루하게 극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 가능한 것은 원작이 원나라 때 작가 기군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 연극일까? 영화 《서울의 봄》 정우성의 대사에서 보았듯이 '저항하는 군인이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 말이 안 돼서'이다. 자신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된 스무 살의 조씨고아는 울부짖으며 묻는다. "20년 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었다는 게 안 믿겨져요." 정영은 대답한다. "이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로 일어난 일이다.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광주항쟁의 비극이 40여 년 전에 진짜로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을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게 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2018년에 볼 때는 몰랐는데 '20세기 블루스'와 '잘못된 성장의 사례' 등을 보고 나니 정영의 아내 역을 맡은 이지현 배우의 연기가 달라 보였다. 악당 도안고 역을 맡아 '영오'라는 개를 훈련시키던 장두이의 원숙한 연기도 믿음직했다. 하지만 정영 역의 하성광을 대신할 배우가 있을까 싶다. 얼굴, 목소리, 대사처리 능력까지 그야말로 대체불가의 명배우다. 1부 끝날 때부터 터지던 객석의 울음은 커트콜 때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친 박수 소리로 변했다.


연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니까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전 세계 어느 곳이든 거짓말인 걸 뻔히 알면서도 무대와 객석으로 나뉘어 진지하게 연극을 올리는 사람이 있고 보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는데 울어서 눈이 벌게진 관객들이 많았다.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진심이었고 단출한 무대의 추상성도 비극미를 더해 주는 요인이었다(잘린 팔의 등장은 새로웠다). 복수극이지만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쫀쫀한 연출 덕에 세 시간 가까운 러닝티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같이 연극을 본 박재희 선생은 "계속 관람 기회를 놓치다가 드디어 보았다"라고 좋아하면서 "어쩌면 그때 놓치고 지금 보아 더 좋았던 것 같다" 만족감을 나타냈다. 마침 2017년 초연 이후 99번째 공연이었단다. 그러니까 토요일인 오늘이 100번째 공연이다. 이 작품을 강추하고 싶지만 이미 다 매진이니 어쩌랴. 인간사가 대체로 이렇다. 그래도 노력하는 사람은 어떡하든 다 본다. 부디 애써서 이 연극을 보시라. 꼭 지금이 아니라도 나중에 꼭 보시라. 정신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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