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경의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사실 이화경은 널리 알려진 작가였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페이스북 친구인 서평가 김미옥 선생이 '나는 왜 여태 이 작가를 몰랐는지'라고 한탄을 하며 소설가 조성기 선생 덕분에 알게 된 행운에 감사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두 분의 연쇄 추천에 힘입어 작가가 13년 만에 펴냈다는 세 번째 단편선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를 당장 구입해 홀린 듯 읽었다.
첫 번째 작품인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부터 읽었는데 도대체 예사롭지 않은 서술 방식이다. 김소월의 시 <개여울>의 한 대목으로 소설 제목을 삼은 기개를 보라. 누구나 아는 시 구절을 가져와 제목으로 삼음으로서 독특한 정서를 자아낸다. 화자 엘제는 문학을 전공하고 글쓰기 강연도 하는 작가인데 알코올중독으로 입원과 퇴원을 밥 먹듯 하는, 대인기피증까지 있는 오빠 한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왜 외국 이름인지는 모른다). "자넨, 여전히 영리한데 참 싸가지가 없어."라고 '데카당'한 지식인 흉내를 내는 한스도 웃기지만 오빠를 병원으로 데려가는 길에 한스 주변을 치우다가 '그를 토막 쳐서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넣어 한꺼번에 버릴 수는 없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대목에서는 킬킬킬 웃음을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웃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전전긍긍이라고 했던가' 같은 철학적 단상들도 명멸하는 단편이다.
'나는 목포의 새아씨였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두 번째 단편 「노라의 뽄(本)」은 사실 표기를 하기 힘든 작품이다. '뽄'을 ㅂ과 ㅅ으로 썼기 때문이다. 소설 제목이나 중간에 나오는 '썸머 바케이숀'이라는 단어처럼 표기만 옛날식이 아니다. 화자(또는 이화경 작가)는 100여 년 전 가수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져 자살한 지식인 김우진의 부인으로 화해 무성영화의 변사가 된 듯 '이쪽'이 아닌 '저쪽'만 동경하던 남편을 비웃는다. 서늘하면서도 공연히 좀 나무라는 듯한 느낌의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이건 일본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여인이 나레이션을 맡으면 딱이겠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만드는 게 소설가의 능력이기도 하다. 휴대폰 액정이 깨지는 것과 소설의 상황과는 상관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화경 작가는 '액정에 부서진 내 얼굴이 조각조각 반짝였다. 나는 언제나 깨질 때만 빛난다'라는 문장으로 기어이 필연을 만들어 낸다. 모란이 피는 닷새 때문에 나머지 삼백예순 날을 견디는 아버지 이야기인 「모란,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긴 시를 읽는 기분이었고, 알코올중독 아버지와 도박중독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학대를 당하다가 가출했던 소년이 다시 소환되어 아버지에게 간 이식 수술을 해주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는 「당신은 무슨 일을 그리 합니까」라는 지옥도에서는 스토리텔링 소설들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찐한 정서'를 마구 발산한다.
소설집을 읽다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이화경의 작품들을 다시 검색한다. 아직 읽을 책이 많다는 사실에 비축한 양식을 확인한 것처럼 뿌듯해진다. 이화경을 읽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후회할 것이다. 여태 이런 소설도 읽지 않고 뭘 했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