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를 들어주는 남편은 꿈을 지켜 줄 수도 있습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원고를 좀 쓰려고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아내가 "오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보통은 여보라고 하지만 가끔 당황하거나 급할 땐 오빠라는 호칭을 쓴다. 나는 또 꿈을 꾸었나 보다, 생각하며 얼른 달려가 그녀의 등을 쓸어 주었다. 아내는 자고 일어나면 등을 쓸어 주는 걸 좋아한다. 역시 꿈을 꾸었다며 꿈 이야기를 시작했다.
항아리를 도둑맞은 꿈이라고 했다. 어떤 개인주택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밖에서 트럭이 와 서더니 남자들이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남자는 고은정 선생이 자기에게 돈을 빌려 갔는데 안 갚으니 대신 항아리를 가져가야겠다며 장독대 앞에 섰다. 기가 막혔지만 막을 수 없었다. 고은정 선생은 아내에게 김치와 장 담그는 법, 밥 하는 법 등을 가르쳐 준 지리산 제철음식학교 교장님이자 음식 활동가다. 물론 윤혜자에게 돈을 꾸고 안 갚을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건 꿈이니까 뭐 상관없다. 윤혜자는 남자들에게 "고은정 선생이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전화를 했지만 불통이었다. 남자는 아내를 보고 "전화기가 두 대인데 그것도 모르냐?'라며 피식 웃었다. 아내는 항아리를 빼앗겼다(그러고 보니 도둑맞는 꿈이 아니라 빼앗기는 꿈이었다).
화가 난 아내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마련한 행사장으로 갔다. 뜬금없는 전개지만 꿈이니까 가능하다. 아내는 두 사람을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간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분위기도 어색해서 적응하지 못하고 그냥 쭈뼛쭈뼛 서 있었다. 더 서 있어봤자 떡고물이 생길 것 같지도 않다고 판단한 아내는 자신의 직업이나 경력이 변변치 않아(꿈에서는 백수였던 것 같다) 여기에 잘못 옷 것 같다, 라고 말하니 그들은 친절하게도 빨간 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 주었다. 아내는 그 계단을 밟고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라고 묻는 나에게 아내는 "전주에 가서 술 마셨지 뭐."라고 말했다. 갑자기 웬 전주냐고 묻고 싶었지만 꿈의 황당한 전개방식을 알고 있는 나는 질문을 삼가한 뒤 어서 다시 자라고 말히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으며 "난 다시 잘 테니까 당신은 꿈 잘 기억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아내는 평소에도 웃기지만 꿈에서도 역시 웃긴다. 고은정 선생님이 이걸 읽으시면 뭐라고 할까. 왜 당신들 맘대로 내 이름을 등장시키냐고 항의를 하실까(사실 나는 내일 발간되는 국민일보 칼럼에도 친한 배우 임세미 씨와 드라마 극본을 쓰는 이기원 작가를 등장시켰다. 나는 이름 대신 아무개 씨라고 하는 게 정말 싫다).
아내의 꿈은 웃긴 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신선한 아이디어를 준다. 아내의 꿈을 기록했으니 이제 원고를 써야겠다. 출간이 코앞이다. 다행히 이번 책은 출판사 대표님도 매우 기대를 하시는 눈치다.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들로 책을 채워 어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