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중간 관람기
3월 31일 일요일, 아내와 나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을 마치고 지친 상태로 대학로를 배회했다. 에너지를 너무 소비했으니 술을 한 잔 마셔야겠다는 아내의 의견에 나 또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열강을 하느라 몸도 지쳤고 바쁠 것도 없으니 천천히 대학로를 기웃거렸다. 학전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어디서 많이 본 남자가 서 있었다. ’학전과 김민기에 대한 다큐‘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동원 PD였다. 우리를 보고 반갑게 웃는 이 PD의 얼굴을 파리했다. 며칠간 잠도 못 자고 편집실에 앉아 있기만 해서 그렇다고 했다. 오늘은 웬일로 나왔냐고 했더니 학전 간판을 떼는 날이라 드론으로 찍으러 잠깐 나왔다는 것이다. 이 PD 옆을 보니 촬영 스태프들이 계단에 앉아 드론을 조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PD와 헤어져 중국집으로 술을 마시러 갔다.
2024년 4월 21일 일요일 밤에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1부가 방송되었다. 그날은 문 연 지 33년 만에 폐관하는 대학로 소극장 학전과 학전을 설립한 대표이자 작곡가인 김민기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나는 처음엔 다큐멘터리를 무심히 보다가 이황의 배우가 나와 ”김민기 선생이 준 출연료를 집으로 가져갔더니 아내가 울더라고요.“라고 말하는 부분부터 울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김민기는 나와서 자꾸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그가 후배들에게 합창이나 동작을 지도할 때, 공연 수익금을 백 원짜리 동전까지 다 공개하고 나누는 것을 볼 때, 하다 못해 김민기와 함께 일했던 배우나 스태프들이 나와서 얘기하는 것만 봐도 자꾸 눈물이 났다(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와 내가 구포국수 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이동원 PD와 만난 날 이황의 배우와의 인연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김민기는 운동권이 아니었는데도 운동권의 상징이 되었다. 그가 만든 노래들 때문이었다. 그는 스무 살 무렵부터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매일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뒷산에 올라가 낮잠을 자다 깨어난 얘기는 그대로 ’아침이슬‘이라는 노래가 되었고 군대 가서 선임하사 퇴역할 때 부르려고 만든 노래는 ’늙은 군인의 노래‘가 되었다. 천재는 무심코 했다고 말하는데 세상은 그 노래들을 다르게 기억한다. ’공장 생활‘ 하던 시절에 김민기가 동료 노동자들의 결혼식 때 쓰려고 만든 노래 ’상록수‘는 퍼지고 퍼져 결국 양희은의 목소리로 다시 불렸고 국민가요가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엔 설경구, 황정민, 이정은은 물론 지금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계 인사들이 총출동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2부에서 ’이 세상 어딘가에‘라는 곡을 78년 송창식의 스튜디오에서 몰래 녹음하던 장면도 나왔다. ’공장의 불빛 - 노래굿‘은 우리나라 최초의 불법 음반(테이프)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민기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 나는 얼마 전 학전에서 《지하철 1호선》을 처음으로 보았다. 이상하게 미루고 미루다 이번에야 겨우 본 셈인데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지하철 1호선‘은 독일 원작을 김민기가 들여와 각색한 작품인데 원작자가 보고 너무 감동해서 로열티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김민기가 지금 많이 아프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울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김민기는 작곡가나 공연기획자라기보다는 시대를 앞서 걸어가면서도 친구나 후배들과의 어깨동무를 마다하지 않았던 거인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거기에 사심이나 영웅심이 전혀 없다는 게 놀랍다. 그냥 거기 그가 있었을 뿐이라는 표정이다. 그런 생각들을 더듬어 가다 보니 내가 흘린 눈물의 성분이 ’감동‘이었다는 결론이 났다. 오늘은 이 다큐의 마지막인 3부가 방송되는 날이다. 이동원 PD는 이 프로그램을 만들며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도대체 김민기 선생과 연결되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고 했는데 오늘의 예고편을 보니 심지어 전두환과도 연결되어 있다. 물론 그가 지향하는 바와는 정반대의 연결이겠지만. 오늘 밤 방송을 기다린다. 다 보고 나면 아마도 나는 3부작을 다시 찾아 몇 번은 볼 것 같다. 또 울면 아내가 놀릴 것 같으니 오늘은 좀 냉철한 마음으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