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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05. 2024

감동의 눈물이 흘러

SBS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중간 관람기

3월 31일 일요일, 아내와 나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을 마치고 지친 상태로 대학로를 배회했다. 에너지를 너무 소비했으니 술을 한 잔 마셔야겠다는 아내의 의견에 나 또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열강을 하느라 몸도 지쳤고 바쁠 것도 없으니 천천히 대학로를 기웃거렸다. 학전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어디서 많이 본 남자가 서 있었다. ’학전과 김민기에 대한 다큐‘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동원 PD였다. 우리를 보고 반갑게 웃는 이 PD의 얼굴을 파리했다. 며칠간 잠도 못 자고 편집실에 앉아 있기만 해서 그렇다고 했다. 오늘은 웬일로 나왔냐고 했더니 학전 간판을 떼는 날이라 드론으로 찍으러 잠깐 나왔다는 것이다. 이 PD 옆을 보니 촬영 스태프들이 계단에 앉아 드론을 조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PD와 헤어져 중국집으로 술을 마시러 갔다.


2024년 4월 21일 일요일 밤에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1부가 방송되었다. 그날은 문 연 지 33년 만에 폐관하는 대학로 소극장 학전과 학전을 설립한 대표이자 작곡가인 김민기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나는 처음엔 다큐멘터리를 무심히 보다가 이황의 배우가 나와 ”김민기 선생이 준 출연료를 집으로 가져갔더니 아내가 울더라고요.“라고 말하는 부분부터 울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김민기는 나와서 자꾸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그가 후배들에게 합창이나 동작을 지도할 때, 공연 수익금을 백 원짜리 동전까지 다 공개하고 나누는 것을 볼 때, 하다 못해  김민기와 함께 일했던 배우나 스태프들이 나와서 얘기하는 것만 봐도 자꾸 눈물이 났다(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와 내가 구포국수 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이동원 PD와 만난 날 이황의 배우와의 인연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김민기는 운동권이 아니었는데도 운동권의 상징이 되었다. 그가 만든 노래들 때문이었다. 그는 스무 살 무렵부터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매일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뒷산에 올라가 낮잠을 자다 깨어난 얘기는 그대로 ’아침이슬‘이라는 노래가 되었고 군대 가서 선임하사 퇴역할 때 부르려고 만든 노래는 ’늙은 군인의 노래‘가 되었다. 천재는 무심코 했다고 말하는데 세상은 그 노래들을 다르게 기억한다. ’공장 생활‘ 하던 시절에 김민기가 동료 노동자들의 결혼식 때 쓰려고 만든 노래 ’상록수‘는 퍼지고 퍼져 결국 양희은의 목소리로 다시 불렸고 국민가요가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엔 설경구, 황정민, 이정은은 물론 지금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계 인사들이 총출동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2부에서 ’이 세상 어딘가에‘라는 곡을 78년 송창식의 스튜디오에서 몰래 녹음하던 장면도 나왔다. ’공장의 불빛 - 노래굿‘은 우리나라 최초의 불법 음반(테이프)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민기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 나는 얼마 전 학전에서 《지하철 1호선》을 처음으로 보았다. 이상하게 미루고 미루다 이번에야 겨우 본 셈인데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지하철 1호선‘은 독일 원작을 김민기가 들여와 각색한 작품인데 원작자가 보고 너무 감동해서 로열티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김민기가 지금 많이 아프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울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김민기는 작곡가나 공연기획자라기보다는 시대를 앞서 걸어가면서도 친구나 후배들과의 어깨동무를 마다하지 않았던 거인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거기에 사심이나 영웅심이 전혀 없다는 게 놀랍다. 그냥 거기 그가 있었을 뿐이라는 표정이다. 그런 생각들을 더듬어 가다 보니 내가 흘린 눈물의 성분이 ’감동‘이었다는 결론이 났다. 오늘은 이 다큐의 마지막인 3부가 방송되는 날이다. 이동원 PD는 이 프로그램을 만들며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도대체 김민기 선생과 연결되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고 했는데 오늘의 예고편을 보니 심지어 전두환과도 연결되어 있다. 물론 그가 지향하는 바와는 정반대의 연결이겠지만. 오늘 밤 방송을 기다린다. 다 보고 나면 아마도 나는 3부작을 다시 찾아 몇 번은 볼 것 같다. 또 울면 아내가 놀릴 것 같으니 오늘은 좀 냉철한 마음으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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