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의 『미오기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귀에 꽂히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선거용 광고였다.
"제가 지역감정에 맞아 쓰러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신 분은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제가 검은돈이 없어 선거를 못할 때 돼지저금통을 보내주신 분도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국민에게만 빚진 대통령 노무현, 국민 여러분 만을 위해서 일하겠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잠깐 나의 사수이기도 했던 카피라이터 송치복 선배가 노무현캠프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카피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결국 노무현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국민에게만 빚진 대통령'이라는 구절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김미옥 작가야말로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독자에게만 빚진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국문학을 전공하거나 등단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페이스북에 서평을 올리고 곰국 끓이듯 살아온 이야기들을 이따금 올릴 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금 김미옥이라는 작가가 낸 두 권의 책에 열광한다. 문단과 상관없이 페이스북과 서점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바람이었다. 내가 김미옥에서 다시 노무현 정신을 본다고 하면 과대평가일까.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고졸 대통령 말고 대학 나온 대통령을 보고 싶다"라고 말한 정신 나간 여자도 있었지만 나는 서울법대 나온 사람보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노무현이 인간적으로든 정치인으로든 천 배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등단한 작가보다 김미옥의 글에 더 끌리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주 새로 나온 내 책을 들고 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님에게 인사를 갔을 때 소장님이 책상 위에 『미오기전』 을 펼쳐 놓고 읽는 것을 보고 김미옥 작가의 인기를 실감했다. 김미옥은 오로지 글의 힘 만으로 조성기 작가를 다시 불러냈고 이화경 작가를 세상에 알렸다. 이 분들 말고도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를 들춰보면 김미옥 덕분에 보다 수월하게 독자 곁으로 갈 수 있었던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이 나오는데 이는 김미옥이 태생적으로 메이저보다 마이너에 끌린 성정 탓이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가 이런 '마이너'들에 대한 애정 고백이라면 『미오기전』은 본인 역시 마이너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명랑 쾌활함을 잃지 않는 김미옥의 인생 블루스다.
어찌 이리 인생이 유쾌하게 기구할 수 있나. 일찍 품을 떠나버린 큰딸이 미워 막내딸에게 공장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했던 엄마 이야기부터 시작해 주먹과 쌍욕이 난무하는 가정 분위기 아래에서도 늘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던 김미옥의 인생은 그 자체가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연애운이 없었다고 하면서도 간간히 등장하는 남자 이야기(차를 세우고 북한강을 함께 바라보며 웃던 남자가 친구 결혼식장에서 신랑으로 서 있던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슬프다)도 재밌지만 카이스트를 나와도 사회적 능력은 떨어져 보이는 남자를 만나자마자 '말을 잘 들을 것 같다'라는 이유로 결혼을 해버린 사연엔 '참 김미옥답다'라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난다. 새벽에 일어나 몇 페이지만 더 읽어야지 했는데 어느새 다 읽어버렸다. 가공할 흡입력이다.
옛날 TV에서 틀어주던 '칼싸움 영화'에서는 삿갓 쓴 검객이 나타나면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곤 하지 않았던가. 지금 주머니엔 드라이버를, 가방엔 술잔을 넣고 다니는 김미옥이 그렇다. 작자 미상의 <춘향전>, 허균의 <홍길동전>, 이제하의 <유자약전>, 왕가위의 <아비정전> 등 수많은 전을 만났지만 지금은 <미오기전>이 최고다. 김미옥을 읽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