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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3. 2024

한 남자의 일생으로 그려 본 한국현대사

극단 즉각반응의《새들의 무덤》


한 사람의 기억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준다면 그것 자체가 그 시대의 초상이 되지 않을까? '한국현대사 시리즈'를 쓰고 있던 하수민 연출은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역사가 영웅서사라면 기억은 민중과 개인의 서사라고, 이렇게 단정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라고 쓴 드라마터그 이성곤의 글에서도 알 수 있다.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과 입장을 통해 만들어지고 필연보다는 우연으로 그 방향이 달라지는데 우연들이 겹치다 보면 결국 그건 필연이 되기도 한다.  

하수민 연출은 2016년 「새들의 무덤」을 쓰기 시작하면서 전남 진도와 서울 창신동, 경기도 안산 등 여러 장소를 다니던 중 한 남자와 만나게 되고 그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일생에 한국 현대사가 아로새겨져 있음을 직감한 그는 딸을 잃은 뒤 바닷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작은 새 한 마리를 통해 다섯 살부터 오십대까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게 되는 오루라는 남자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다.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그리고 한국현대사 시리즈 《무라》에서 열연했던 서동갑 배우가 오루로 분해 두 시간 반 동안 열연한다. 그와 함께 진도의 씻김굿부터 창신동의 공장까지 빈 무대를 꽉 채운 손성호, 김현, 장재호, 곽지숙, 김시영 등 배우들의 연기도 감동적이다.  특히 공연 내내 등장하는 새와 오루의 쌍둥이 딸 오손이와 도손이 역을 모두 소화한 강민지 배우의 노력은 칭찬할 만하다.


하수민 연출은 코로나 19가 시작될 때 마스크를 쓰고 연습을 시작했는데 배우와 스태프들이 함께 움직여 뭔가를 만들어 내고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낼 때 희열을 느낀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이제 4년이 지나 재공연을 하면서도 여전히 소품이나 배경 없이 텅 빈 무대를 고집하는 이유도 그런 '관념의 형상화'가 주는 가치를 높이 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극을 보고 나오며 아내와 극본과 연출이 같아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수민 연출은 이 연극의 극본을 쓰고 무대에 올리기 위해 정말 많은 공부와 조사를 했고 이를 한 남자의 일생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탄생한 극본은 너무 훌륭하지만 그게 빠짐없이 무대에서 발현되다 보니 너무 꽉 차는 느낌이 들고 대사도 직접적이었다. 이야기는 조금 빈 듯하고 이상한 구석도 있어야 더 사람을 끌어들이는 법이다.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15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을 조금만 줄였으면 어떨까 했다. 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무대 배경이 시원하게 열리는 걸 처음 보았다. 극이 시작되고 서동갑 배우가 "여기요!"라고 외치며 등장할 때 커다랗게 뚫린 창밖으로 보이는 대학로의 모습이 싱그러웠다. 2024년 6월 23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그러니까 오늘이 마지막 공연날이다. 제45회 서울연극제 참가 작품이다.

● 극단 : 즉각반응

● 작·연출 : 하수민

● 출연 : 서동갑, 손성호, 김현, 장재호, 곽지숙, 김시영, 심민섭, 홍철희, 김형준, 김다임, 강민지

● 러닝타임 150분 (인터미션 15분 포함)

● 일시 : 2024. 6. 15(토) ~ 6.23(일)

● 장소 :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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