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옹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16살 때부터 혼인만 하면 서방들이 시들시들 죽어 나자빠지니 말이다. 무슨 남자들이 이토록 허약한가. 누구나 한 번 보며 반하는 외모에 음기마저 드센 그녀로서는 어이가 없는 시추에이션이다. 남편이 죽을 때마다 거듭 혼인을 해 보았으나 여전히 줄초상이 나고 결국 마을 남정네 씨가 마를 것을 염려한 촌장에 의해 쫓겨나는 옹녀. 하지만 그녀는 타고난 팔자를 탓하는 대신 스스로 분기탱천하여 인생의 남자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기존 여성상과는 다른 옹녀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이런 설정을 깔아 놓고 세상으로 나갔다가 희대의 카사노바 변강쇠를 만났으니 이 어찌 극이 재밌지 않겠는가. 더구나 고선웅의 작품인데.
평소 말을 아끼는 고선웅 연출이 "이번엔 진짜 재밌게 만들었다"라고 자랑했다는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5년 만에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는데 올해가 탄생 딱 10주년이란다. 극본·연출과 음악감독을 맡은 고선웅-한승석 콤비도 좋지만 옹녀역을 맡은 김우정과 변강쇠 역의 유태평양 역시 찰떡궁합이다. 특히 오늘 본 김우정은 젊고 에너지 넘치는 옹녀 역에 걸맞은 외모와 소리 실력에 현대적인 유들유들함까지 갖추어 더욱 즐거웠다. 유태평양의 가창력과 연기력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 이광복, 김준수, 민은경, 김금미 등 단원들도 이번엔 소리부터 율동까지 저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웃기려 달려드는 형국이다. 옹녀모 역을 맡은 김차경의 소리와 연기도 일품이었다.
소리와 율동은 찰지고 대사는 야함을 넘어 적나라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 모든 시퀀스에 과장과 유머가 섞여 객석에 앉아 있는 남녀노소를 무장해제시킨다. 아, '소(少)'는 빼야겠다. 이 창극은 '20세 이상 관람가'니까. 변강쇠가 나무하러 갔다가 뽑아 온 장승을 해치는 바람에 벌어지는 후반부의 해프닝과 결론도 파격적이고 장승들의 연기도 하나같이 빼어나다. 이번 작품을 통해 국립창극단 사람들이 야한 걸 무척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극이 끝나자 꽉 찬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금요일 저녁에 다른 약속 다 제쳐두고 국립극장에 온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었다. 9월 15일 일요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올해 놓친다면 내년에라도 꼭 보시라. 인생에서 즐거운 135분을 보장받는 흔하지 않은 기회니까 말이다.
▶ 극본·연출 고선웅
▶ 작창·작곡·음악감독 한승석
▶ 안무 박호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