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명장도서관 강연 후기
지난 2024년 9월 11일 수요일은 굉장한 날이었다. 전날 명필름의 영화 《해야 할 일》 시사회에 갔다가 뒷풀이까지 하고 밤 1시 반에 귀가했으나 부산명장도서관 강연이 있는 날이라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났다. 행사 섭외 실무를 맡은 이슬 계장님이 조금 일찍 와서 관장님과 티타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길래 6시 36분 티켓을 6시 3분으로 앞당겼던 것이다. KTX 안에서 자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아 책을 읽다가 부산역에 내렸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손수건으로 머리를 가린 채 택시를 타고 40분 정도를 더 달려 명장도서관에 도착했다. 김정남 관장님(여성입니다)과 만나 차를 마시는데 과자가 딸려 나오길래 염치불고하고 빵 같은 건 없느냐고 물었다. KTX에서 내렸을 때부터 배가 고팠으나 택시 이동 시간이 불안해서 요깃거리를 챙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슬 계장님이 가져온 몽쉘통통을 하나 먹고 강연장으로 갔다. 평일 아침 10시인데도 열 명이 넘는 분이 앉아서 내 강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2001년 뉴욕에서 있었던 9.11 테러 이야기로 강연의 문을 열고 내가 『읽는 기쁨』이라는 책을 쓴 이유와(독서의 기쁨을 다시 누렸으면 하는 마음) 현대인은 뭐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한 줄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곁들여 책이 취지를 밝혔다. 최근 작품 『읽는 기쁨』을 중심으로 하는 강의였지만 이전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와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가져오신 분도 있었다. 시내에서 떨어진 곳이고 도서관도 작은 편이라 모객이 별로 안 되었다고 하지만 그날 모인 분들 중엔 나이 드신 분은 물론 젊은 여성 독자도 있었고 무슨 질문이든 대답을 척척 잘하는 남자 고등학생도 한 명 있었다.
박선미 선생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정말 좋아한다고 했고 남영숙 선생도 평소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읽는 기쁨'이 나와 너무 반가웠다며 "이번 책으로 큰일을 만드신 것 같아요"라는 과분한 칭찬도 해주셨다. 윤춘호 선생은 내 글쓰기 강의를 듣다가 "셰익스피어는 베로나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쓸 수 있었을까요?"라는 재밌는 질문도 하셨다. 나는 '희곡을 쓰는 것과 별도로 극단도 운영하기도 했던 셰익스피어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을 테고, 그 과정에서 장소성에 어울리는 이야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꿰뚫는 능력이 더 발달했을 것"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요즘 막장이란 소리를 듣는 아침 드라마의 플롯들이 모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비롯되었음을 말씀드렸고 아울러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기에 소설을 읽는다'는 박연준 시인의 말도 소개했다.
강연이 끝나고 추첨을 통해 여섯 분에게 『읽는 기쁨』 저자 사인본을 증정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윤춘호 선생은 당첨된 자신의 책을 엄마와 같이 온 어린 소녀에게 양보해서 박수를 받았다. 자기보다는 자라나는 세대가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강연이 모두 끝나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김 과장님에게(명함을 못 받아 성함을 까먹었다) 윤춘호 선생이 명장도서관의 오랜 이용자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도서관은 삶과 문화가 숨 쉬게 해주는 공간이고 도서관에 오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 《주책공사》에 가서 이성갑 대표를 만났는데 이건 나중에 써야겠다. 아침부터 의미 있는 강연을 했고 또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이성갑 대표도 만났기에 이래저래 '빅데이'였다(주책공사 방문기는 다음에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