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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10. 2019

렌터카 빌린 지 이틀 만에 생긴 일

어느 초보운전자의 렌터카 모험담

밖에서 돌아온 아내가 배가 고프다고 하길래 커피숍 같은 데 가서 뭐라도 좀 먹자고 하고 일단 나왔다. 예전과 달리 이젠 차가 있으니 조금 멀리 가도 된다는 생각에 '성북동빵공장'에 가보기로 했다. 성북동빵공장은 우리 동네에 있지만 걸어가기엔 조금 멀고 또 언제나 사람이 많아서 잘 가지 않던 제과점이었다. 그저께 렌터카 회사에서 빌린 티볼리 디젤을 몰고 북악스카이웨이쪽으로 향했다. 도중에 골목에서 큰 차와 마주쳐 조금 비켜주는 과정에서 뒤쪽에 '빠박'소리가 난 것 같았으나 별 것 아니겠지 하고 그냥 갔다. 뭔가 플라스틱을 타이어로 밟은 느낌이었다.  

성북동빵집 앞 도로는 여전히 엄청나게 복잡했다. 내가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빈자리가 보이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주차요원이 뭐라 소리를 지르며 막아서는 것이었다. 이미 자동차가 반 이상 진입을 했는데 막아서다니 황당했다.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긴 하는데 창문을 내리고 들어도 뭐라고 하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당황한 내가 차를 앞으로 조금 더 디밀었더니 주차요원이 샌들을 신은 발로 막아서는 시늉을 하다가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반말로 외쳤다.
"중앙선 침범에 내 발도 밟았어! 이거 시시티브이에 다 찍혔거든. 당신 고소할 거야, 경찰 불러!"

황당해서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더니 주차장 입구에 '좌회전 금지'라고 시뻘겋게 써놓은 안내문이 보였다. 내가 초보운전인 데다가 많이 당황한 터라 안내문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 곳은 빵집과 바로 옆의 냉면집 때문에 늘 주정차 시비가 끊이지 않는 곳이고 교통량 발생도 많아서 인근 주민들과 늘 다툼이 많은 곳이라 신고도 많다고 들었다. 그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왔어야 했는데,라고 후회를 하고 있는데 다른 주차요원 중 누군가가
"타이어 펑크 났어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얼른 차를 쳐다보니 오른쪽 뒷바퀴가 푹 주저앉아 있었다. 펑크가 아니라 찢어진 것 같다고 했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일단 차를 주차공간에 세우고 아내와 밖으로 나와서 주차요원의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중앙선 침범이라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어, 중앙선 침범이 범죄라는 건 초등학생도 다 아는 건데 어, 몸으로 막아서는 걸 그냥 차로 밀고 들어와 어? 라며 불 같이 화를 냈다. 머릿속에 하얘져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일단 렌터카 사장님에게 전화를 해 타이어가 찢어졌다고 했더니 보험회사를 알려주며 전화를 하라고 했다.

아내가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는 동안에 나는 주차요원들과 얘기를 했다. 다른 주차요원이 와서 작은 소리로 일단 사과를 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안 그러면 진짜 경찰을 부를지도 모르고 또 그냥 다쳤다고 주저앉으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주차요원들끼리 짜고 '굿캅 배드캅' 놀이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할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 둬서 명함이 없는 나는 가방에 있던 노트를 찢어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적어 주차요원에게 주었지만 받지 않았다  


보험회사에서 주선한 레커차 운전자가 자신은 지금 먼 곳에 있어서 이십오 분쯤 후에나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주차요원들이 그 소리를 듣더니 이왕 커피 마시러 오셨으니 가게로 내려가서 커피니 마시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당신 같으면 이 와중에 커피가 목으로 넘어가겠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계속 차 옆에 서 있어봤자 심란하기만 하겠다 싶어서 아내를 먼저 가게로 내려 보내고 나는 계속 주차요원에게 가서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나 주차요원은 들은 척도 않고 계속해서 드나드는 차들에게 수신호를 보낼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밑으로 내려가 아내가 건네는 아이스커피 한 잔을 문제의 주차요원에게 가져다주었더니 괜찮다고 하면서도 웃으며 받았다. 다시 매장으로 내려가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약간 진정이 된 내가 성북동빵공장만의 명물인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케이크까지 사와 테이블 위에 가루를 온통 흘려가며 먹고 있는 동안 보험회사의 연락을 받은 레커차가 도착을 했다. 레커차 아저씨는 견인을 해서 찢어진 타이어를 교체할 계획이었는데 이 차는 전륜구동이라 끌고 가면 휠이 다 망가진다고 했다. 그럼 여기서 타이어를 교체하면 되지, 하고 트렁크를 열어보니 스페어 타이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프라스틱 프레임으로 빈자리를 채워놓고 있었다). 요즘은 스페어 타이어가 없는 차가 많다고 하더니 이 차도 그런 모양이었다. 진퇴양난. 할 수 없이 타이어를 떼어내 다른 카센터에 가서 교체하기로 했다. 아저씨가 자신은 여기 지역 담당자가 아니라 잘 모른다면서 혹시 아는 카센터가 있느냐고 묻길래 없다고 대답했다. 저는 초보운전자고 이 차는 렌트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서 저는 전혀 도움이 안 돼요,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한 대답이었다.


레커차 아저씨가 자리에 주저앉아 타이어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나사 다섯 개를 다 풀었는데도 타이어는 꿈쩍을 안 했다. 한 번도 타이어를 교체하거나 점검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아저씨가 레커차 안에서 플라스틱 망치를 가져와 타이어와 휠을 탕탕 두들기자 한참을 버티던 타이어가 어느 순간 떨어졌다. 안을 살펴보니 너트가 있는 지점에 녹이 슬어 있었다. 떼어낸 타이어를 들고 아저씨와 같이 레커차를 타고 카센터를 찾아 나섰다. 휴가철이라 노는 곳이 많다고 했다. 아저씨가 가는 동안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보문동의 카센터 한 곳을 알아냈다. 렌터카 사장님이 중고 타이어로 교체를 해도 무방하다고 했는데 중고가 있으면 그게 가능하고 아니면 새 타이어를 사야 하는데 어쨌든 타이어값은 내가 물어야 하는 거라고 했다. 한숨이 나왔다. 차 안에서 아내에게 '너무 걱정하지마. 타이어 바꿔서 얼른 가져갈게'라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더니  '걱정 안 해. 당신이 고생이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답장이 왔다.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아내의 대범한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레커차 아저씨는 자신은 원래 수유리 쪽에서 일하고 오늘 비번이라 쉬는 날인데 동료 중 한 사람이 아프다고 안 나오는 바람에 대신 나왔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티볼리에 맞는 타이어가 드문  편 인데 마침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외국에서 살다 오셨어요?'라고 묻길래 '아니요, 한국에서 쭉 살았어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하도 백치 같이 구니까 묻는 것이리라.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바보 같이 웃었다. 새 타이어는 십만 원도 넘는데 새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중고 타이어 값이 육만 원이라고 했다. 아까 아내가 찔러준 현금 중 육 만원을 카센터 사장님에게 드리고 나머지는 고맙다며 담뱃갑으로 레커차 아저씨에게 드렸다. 교체한 타이어를 들고 다시 성북동빵공장 주차장으로 왔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레커차를 막아서며 거칠게 수신호를 하는 주차요원을 보고 아저씨가 화를 냈다.
"저 새끼들은 주차요원이 무슨 벼슬아친 줄 알아. 웃겨 진짜."

주차요원의 제지 때문에 할 수 없이 레커차를 도로 건너편에 세운 아저씨가 타이어를 들고 주차장으로 가서 수동 렌치로 교체해 주었다. 찢어진 타이어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던 렌터카 사장님이 메신저로 더운데 수고하셨다고 하며 타이어값이 얼마였냐고 묻길래 육만 원이라고 했더니 렌터카 회사에서 반을 부담해 주겠다고 하며 계좌번호를 보내달라고 했다. 고마운 일이었다(저녁에 정말 삼만 원이 입금되었다).


아저씨는 돌아가고 우리는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며 빵집 옆에 있는 '성북동면옥' 본점에 들어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 가게 역시 손님이 많아 일층 이층 모두 바글바글했다. 나는 냉면을, 아내는 갈비탕을 시켰다. 갈비탕 안에 왕갈비 두 대가 나왔길래 아내가 하나를 내게 주었고 물냉면은 나 혼자 거의 다 먹었다. 함흥냉면이었다. 밖으로 나와 주차료 이천 원을 내고 차를 몰고 나왔다. 아까 생난리를 치던 주차요원이 우리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마트에 들러 장을 보기로 했었는데 내가 또 잘못해서 옆에 있는 커피숍 주차장으로 들어가 헤매다가 겨우 나왔더니 아내가 한숨을 쉬며 "여보, 우리 차 반납할까?"라고 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은 두 달 일정으로 렌터카를 빌린 지 이틀 만에 별별일을 다 겪었다고 하며 웃었다. 차를 받자마자 인제에 다녀왔는데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찢어졌으면 어쩔뻔 했단 말인가. 그나저나 나는 아직 티볼리 디젤의 자동차 보닛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고 여는 방법도 모른다. 더 문제는 보닛을 열고도 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그냥 다시 닫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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