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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02. 2024

우습고 떠들썩하고 슬픈 한일합작극

연극 《함석지붕의 플레밍》

김철의 작가 겸 연출을 처음 만난 것은 《이카이노 바이크》라는 가슴 찡한 연극의 극본을 통해서였다. 재일교포인 김철의 작가는 배우도 겸하는데 이번 연극 《함석지붕의 플레밍》에서는 착하고 무능하며 우스꽝스러운 아버지 역을 맡아 일본 배우들과 함께 열연을 펼친다(연극은 일어 대사에 자막으로 진행된다).


이야기는 가깝게 지내던 '성귀 형님'이 우리나라(북한)의 스파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들에게 접근해 자신도 스파이를 시켜 달라고 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유는 오로지 아들인 태종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다. 이처럼 어이없는 스파이 생활은 곧 초등학생 아들 태종에게 들키게 되어 그들은 함석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필요한 정보를 캐내는 스파이 행동에 몰두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진짜 스파이를 하기엔 아는 것도 없고 능력도 없으므로 성귀 일당에게 농락당한 꼴이 되고 만다. 007 영화 얘기를 반복하며("머리카락이 얇아진 건 숀 코너리를 닮아가기 때문이야" "문레이커는 잊으라니까!")우습고 장난스러운 스파이 행각은 그래서 더 슬프고 애잔하다. 우리나라 연극과는 좀 다르게 과장된 동작과 표정을 창조하는 일본 배우들의 연기는 진한 페이소스를 자아내며 무대를 압도한다. 정말 소리소리 질러가며 다들 열심히 한다.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경계인의 삶을 살아온 김철의는 인간 본연의 고독을 알고 있다. 이번 연극은 오세혁 작가가 연결해 줘서 볼 수 있었는데 극장엔 변영진 연출 등 불의전차 팀들의 얼굴도 보여 반가웠다. 제목에 들어 있는 '플레밍'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일까 서로 궁금해하다가 내가 "혹시 이안 플레밍 아닐까요? 007 얘기 많이 했으니까."라고 했더니 다들 그런 것 같다고 하며 나중에 김철의 작가에게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극장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나온 김철의 작가에게 인사하고 아내와 내가 쓴 책 세 권을 선물로 드렸다. 함께 온 일본 배우나 스태프들과 달리 우리말을 잘하는 김철의 작가이기에 언젠가는 우리가 준 책을 읽어 주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 연극은 일본팀 kulkri & 극적 공동체 창작심의 합작 연극인데 한극날을 맞아 진행된 제6회 말모이축제&연극제' 공식 참가작 중 재일(在日)지역 재일동포 가족사를 다룬 공연이다. 대학로 후암스테이지에서 2024년 10월 02일(수)부터 05일(토)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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