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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14. 2019

알 수 없는 일들

잘 산다는 건 뭘까요?


여학생 때 세례를 받았을 정도로 나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6.25라는 전쟁을 거치면서 신이라는 존재에 강한 의구심을 품게 된 것 같았다. 내가 관찰하기론 어머니의 삶 어디에도 종교인으로서의 자질이나 경건함 등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더구나 시집와서는 살림하랴 직장생활하랴, 게다가 아이들까지 낳고 키우느라 종교 같은 데 관심을 가질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과 심심풀이로 가끔 점집이나 다니고 하시던 어머니가 퇴직 이후 돌연  절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부처님을 절실하게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뭐든 시작했다 하면 몇 년은 꾸준히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매주 절에 다니시면서 각종 행사에 참여하셨고 특유의 꼼꼼함으로 회계나 총무 등을 맡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다니던 절의 주지스님이 빚에 몰려 자살하는 사건이 생겼다. 사치를 하거나 여자 문제 따위가 아니었다. 낡은 절을 중건하기 위해 많은 빚을 냈는데 생각보다 공사가 커지고 차질이 생기면서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그만 자살을 선택한 것이었다. 허무하고 황당했다. 나는 "아니, 무슨 스님이 돈 문제로 자살을 해요, 그것도 공적자금 때문에?" 라며 웃었지만 어머니는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니다. 너무 놀리면 못쓴다.' 라며 나를 나무라셨다. 아이러니, 모순... 이런 단어들로 그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제 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친구 하나가 "렌터카 얘기 쓴 거 읽었다. 너 참 재미있게 살고 있더라."라며 웃길래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도 도대체 재밌게 산다거나 잘 산다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 스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분도 겉으로는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종교인이었을 텐데. 적어도 그런 식으로 생을 마감할 분은 아니었을 텐데. 세상에 비친 나와 진짜 나 사이엔 얼마나 무수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일희일비하며 살기는 싫고. 어머니는 주지스님이 자살을 한 이후에도 오래도록 그 절을 다니셨다. 아마도 어머니는 세상엔 참 알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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