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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17. 2019

흥분하지 않아야 똑바로 보인다고 말하는 영화

[주전장] 리뷰

'2차대전 당시 조선인 위안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찾아온 개인사업자형 매춘부였다'거나 '천황의 나라인 일본에 오류가 있을 수 없으므로 어떤 경우라도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헛웃음이 나오다가도 결국은 너무나 기가 막혀서 한숨을 퍽퍽 내쉬게 되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피해 당사국의 일원인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일부 극우파를 제외한 일본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위안부'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어본다는 경우가 허다하다. 논란은 고사하고 아예 정규 교육시간에 위안부에 대해 가르치지를 않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진 걸까? 일본계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 감독은 두 나라가 한 가지 사안엔 대해 이렇게 판이한 인식을 가지는 현상이 궁금해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위안부에 관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한 편 만들게 된다. 아니, 사실은 그전에 일본에서 5년간 영어교사로 일할 때 느꼈던 일본 인종차별 문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극우파들의 협박을 받은 뒤 이 프로젝트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대체 일본 우익들은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저런 거짓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 라고 화부터 내는 건 궁금증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어느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 대신 '한국과 일본은 서로 정보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가지고 접근해 보기로 했다. 일단 미국에서 일본 극우파들을 대변해주고 있는 미국인들을 만나고 그 뒤에서 그들을 후원하는 일본인들도 만난다. 물론 한국의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현 정의기억연대) 관계자도 만나고 [제국의 위안부]라는 문제적 작품을 쓴 박유하 교수까지 만난다. 그러다 깨닫는다. 아, 이 두 나라의 첨예한 쟁점 안에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도사리고 있구나. 이제 위안부 문제는 팩트보다는 인식의 싸움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메인 배틀 그라운드'가 미국이라는 걸 먼저 알아야겠구나.

미국은 필요할 때마다 한국과 일본을 억지로 화해시키려 해왔다. 그게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 미국 반대 진영들이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의 패권을 유지하는 데 그나마 유리하기 때문이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이 체결한 한일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불가역적' 위안부 협상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일본 우익의 입장과도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일본 극우들은 미국에서 위안부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만 있다면 전 세계의 인식도 자동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토록 철저히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진실들을 덮으려는 노력을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꾸준히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는 형식적으로는 민간 발행이지만 필요할 때마다 국가가 '불합격 처리'를 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서 결국 국가의 지배를 받는다. 위안부 문제나 난징 대학살 사건이 교과서에서 사라진 이유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대한민국이 소녀상을 통해 자꾸만 일본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문제를 일으킨다고 여기게끔 한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소녀상의 의미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부장적인 사회인식 덕분에 이중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정신대 할머니들의 증언이 자주 바뀌는 바람에 오히려 역공격을 받을 때도 있다. 20만이라고 주장하는 조선의 위안부 숫자가 의심을 받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보다 냉철한 시각을 확보하게 된 감독이 3년간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만나 한 인터뷰이다 보니 영화는 어디 한 군데로 치우치지거나 쉽게 끓어오르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영어 나레이션으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감독의 목소리를 통해 '내가 느꼈던 혼란을 관객들도 똑같이 느껴봤으면' 했다는 그의 제작 의도대로 특정한 사실에 집착하기보다는 보편적 시각으로 전체적인 맥락을 잡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중반까지 애써 객관성을 유지하던 감독의 태도는 '나는 게을러서 남이 쓴 책은 읽어보지 않는다'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일본 극우 핵심인사의 발언 앞에 무너지고 만다. 이성적이고 공평한 척하던 우익들의 허점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울부짖음에서 시작한 영화는 그래서 결국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가장 먼저 공객석상에서 증언을 했던 김학순 할머니의 인터뷰 영상으로 끝을 맺는다. 감독이 정신대 할머니들의 주장이 진실이라는 것을 백 퍼센트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만들었다면 영화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미키 데자키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일본인이 아니듯 그 또한 상식을 추구하는 세계인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는 것은 언젠가 그분들의 정의가 구현되는 희망을 뜻한지만 또한 인종차별, 성차별, 파시즘과 맞서 싸우는 것을 뜻한다”라고. 한국인이나 일본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함께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의 제목은 정확히 [主戰場, The Main Battleground of Comfort Women Issu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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