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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9. 2019

박범신의 [더러운 책상]

독하다토요일 시즌3 세 번째 모임

박범신의 많은 작품 중 [더러운 책상]을 택한 이유는 첫째,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박범신의 소설은 '풀잎처럼 눕다'나 '물의 나라', '불의 나라'처럼 멋지고 상징적인 제목들이 많았는데 '더러운 책상'은 그것들과는 달리 뭔가 개인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향이 강하게 나는 동시에 청소년스러우면서도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가 없는 제목이었습니다. 자전적 소설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스쳐가면서 읽은 적은 있는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저는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독하다 토요일 시즌3 '작가들의 리즈 시절' 책으로 이 작품을 골랐던 것입니다. 지난달 김영하에 이어 이번 달엔 어쨌든 박범신의 책을 읽기로 했었거든요.

그러나 모임에 가기 며칠 전 윤혜자 씨와 번갈아 '더러운 책상'을 읽으면서 아, 이건 우리 취향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말줄임표가 많은 소설을 싫어하는데(그래서 신경숙을 별로 안 좋아했나?) 이 책은 유난히 말줄임표가 많았습니다. 윤혜자 씨 역시 쭉쭉 뻗어나가는 서사가 아닌 '내면 묘사' 때문에 읽기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느낌인데 다른 회원들은 어땠을까 궁금해지면서 역시 독서모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2019년 8월 17일 오후 2시. 광화문과 서소문 사이에 있는 피어선빌딩 안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 모인 우리들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며 각자 가져온 간식도 함께 꺼내놓았습니다. 저는 점심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어린애처럼 시장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윤혜자 씨와 김성희 씨가 사 온 빵을 아귀아귀 먹고는 금세 배가 불러 헉헉거려야 했습니다. 연구소에 얼음을 만드는 기계가 있길래 윤혜자 씨가 켜보려다가 실패했었는데 여름 사나이 서동현 씨가 오더니 단박에 기계를 작동시켜 얼음을 만드는 바람에 회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모임 전에 윤혜자 씨가 메신저로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정아름 씨가 이 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해서 모두들 그녀의 얘기부터 듣고 싶어 했습니다. 정아름 씨는 일단 흥미롭게 읽었는데, 문체의 특성상 집중해서 똑바로 읽지 않으면 좀처럼 읽히지 않는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기찻길이나 고아원 등의 장소, '이리'라는 특정 지역, 하수구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묘사 등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받은 임기홍 씨는 소설 읽는 게 좀 고역이었던지 "예술가의 길은 어렵구나. 이렇게 써야 예술가야?"라고 투덜거렸다고 소감을 얘기해서 좌중을 웃겼습니다.

저는 헤세의 <데미안>부터 시작해 예전에 심야 라디오 프로에서 자주 언급되던 글귀들이 쏟아지다가 뒷부분 화장실 얘기를 할 때는 갑자기 사실주의로 널을 뛰는 게 좀 불편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도 쓸 수 있어'라는 작가의 자만 같아서 불편했다는 것이었죠. 이 소설은 어쩐지 박범신이라는 작가가 쓰고 싶은 대로, 또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그때그때 춤을 춘 느낌이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고등학교 때인지 대학교 초반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박범신의 [풀잎처럼 눕다]라는 작품으로 성인소설에 입문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던 그 작품으로 굉장히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를 전에도 한 적이 있었으니까요다. 그 후로 [은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책도 읽었는데 소설이 훨씬 더 좋았고 웹소설인 [촐라체]는 읽다 말다 하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러운 책상]은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2000년대 초반에 쓴 작품인데도 스타일이나 구성이 문청 스타일이라 적잖이 부담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다만 이런 소설을 읽음으로써 자신이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깨닫게 된다고 하며 웃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평소에도 관념적인 글을 싫어하고 특히 소설의 경우엔 스토리로 달려가는 게 좋다고 여러 번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끝까지 다 읽기는 했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소설이 나왔을까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작가가 청소년기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을 했는지에 관해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의식의 과잉도 눈에 띄었고 그때 유행했던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온 면도 있어서 조금 유치하기도 한데, 어쨌든 못 쓴 소설은 아니라는 얘기죠. 만해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니까요. 정아름 씨는 군데군데 유치한 면도 있지만 주인공이 이리시에 와서 처음 하숙방에 들어가던 때의 묘사라든지 빗소리, 바람소리, 별... 그런 감성을 읽다 보면 작가가 매우 섬세한 아이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윤혜자 씨가 요즘 즐겨 보고 있는 <열여덟의 순간>이라는 드라마 얘기를 하며 박범신 시대의 십 대와 지금의 십 대 중 어떤 아이들이 더 행복할까,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글쎄요. 어떤 시기든지 십 대 후반은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괴로운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행복한 십 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중론이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사창가 얘기가 너무 불편하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십 대 이야기로는 지나치게 극적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도 '자지'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 게 거슬린다고 말했습니다. 소설에서 한두 번씩 어쩌다 성기 이름이 나오는 건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이렇게 자주 나오는 건 너무 위악적이라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윤혜자 씨는 책 뒤에 붙은 황현산 선생의 해설을 읽으면서 '평론가의 고충'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기 같으면 별로 쓰고 싶지 않았을 텐데 인간관계나 부탁 때문에 쓰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는 것이겠지요. 저는 읽지 않았지만 평소 황현산의 글을 좋아하는 윤혜자 씨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의견이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주인공 청년이 창녀촌에서 시를 읽어줬을 때 창녀들이 우는 장면이 특히 불쾌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여자들에겐 그런 감성이나 지성이 없다고 단정하는 마음이 읽혀서라는 거죠. 솔직히 저는 그 시가 그리 눈물 나는 시가 아니라서 어리둥절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저까지 욕을 먹을까 봐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대신에 치기 어린 십 대 시절답게 수면제를 조금씩 사서 모으고 그걸 씹어먹고 하는 건 좀 귀엽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연쇄 살인마나 이리 폭파사건이 나오는 건 좀 뜬금없긴 하지만.

김성희 씨는 박범신이라는 작가가 문장력이 좋아서 토막토막 얘기는 되게 잘 쓰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별로라는 소감을 말했습니다. 다 읽고 나면 '도대체 뭔 얘기야?'라는 생각이 든다는 게 솔직한 소감이라 말했습니다. 윤혜자 씨도 기존의 다른 박범신의 소설과는 다르다는 얘기를 했을 때 여행 때문에 이날 모임에 참가하지 못한 김하늬 씨가 카톡 메신저로 독후감을 보내왔습니다. 오늘 못 가서 죄송합니다! 여행 전에 읽으려 하고 가는 길에도 좀 읽으려 했는데 너무 조금 읽어서 세줄 평이 아니라 두 줄 평(?)입니닷ㅠㅠ...이라고 하면서 보내온 평은,

유려한 수사가 돋보이던 글.

독자를 위한 글이 아닌 작가를 위하는 글...?


이었습니다. 모두들 그 의견에 동조하는 눈치였습니다. 임기홍 씨는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그렸던 모래 그림 얘기를 했습니다. 그림을 못 그리니 추상화가 되더라는 얘기를 하면서 그때를 기억하는 이유가 "너만 좋다고 예술은 아니다. 너 말고는 아무도 못 알아보는데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느냐..."라고 얘기하신 선생님이 생각나서라고 했습니다. 즉,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함몰되면 타인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얘기였죠. 이건 마치 어린 시절 작가의 일기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이런 걸 꼭 소설로 썼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더 어렸을 때 읽었으면 흥미로울 수도 있었는데 지금 읽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했습니다. 서동현 씨는 그런 의미에서 저 나이 때는 모두 의식이 널을 뛰는 시기인데 자기 세대만 해도 이런저런 곳으로 눈 돌릴 데가 많았지만 박범신 때는 그런 게 상대적으로 적었으니 더 내부에서 방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는 카뮈의 [이방인]이나 이범선의 [오발탄] 같은 정서가 느껴진다고도 했습니다. 아마도 주인공의 외골수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선택들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박범신은 딸 많은 집의 외아들 같은 느낌'이라고 해서 모두들 와아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 나오는 창녀들 얘기나 나중에 창녀가 된 재클린을 다시 만난 얘기 등은 진짜였을까, 하는 얘기도 했습니다. 물론 누구도 알 수 없는 얘기라는 걸 잘 압니다. 이리시 폭파 사고로 창녀촌이 모두 날아간 얘기를 하다가 예전에 제 친구 하나가 대학 시험을 포기하고 가출해 이리역까지 내려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밤새워 쓴 엽서가 저희 집에 도착해 난리가 났었던 얘기를 하며 독서 모임은 옆길로 빠졌습니다. 그 친구는 그 뒤로도 수많은 기행을 일삼았는데 그의 센티멘털한 에피소드들을 얘기할 때마다 모두들 한심하고 신기해서 한숨을 쉬다가 다음 달엔 동숭동 동양서림 이층에 있는 시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모임을 하고 애프터는 저희집인 '성북동소행성'에서 옥상파티를 하기로 한 뒤 일어났습니다.



이차는 서대문에 있는 '푸른초장 오리백숙' 집이었는데 음식이 너무 맛있고 실해서 멤버 모두 만족하고 헤어졌습니다. 독하다 토요일에서 다음에 읽을 책은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입니다. 이 또한 너무 오래된 작품이라 지금 다시 읽으면 느낌이 어떨까 약간 걱정이 되긴 합니다만, 어쨌든 작가들의 리즈 시절 글을 읽기로 했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볼 작정입니다.



(지난번 후기는 제가 게을러서 쓰다가 말았는데 언제 시간 날 때 이어서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푸른초장 오리와 메밀 메밀 막국수'라 쓰여 있어서 좀 헷갈리긴 하지만 음식은 참 맛있는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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