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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9. 2019

소설가 김훈의 주례사

비오는 날 읽은 책

작가 김훈이 결혼식 주례를 몇 번 서고 비난받았던 얘기를 읽으면서 하하하 웃었다. 자신은 주례를 설 만한 인품이 못 된다고 하면서도 끝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몇 번의 주례를 섰는데 첫 번째 행사에서는 고민 끝에 남편과 아내가 요리를 배워서 음식을 해 먹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인간의 정서는 먹는 것에 크게 지배받기 때문에 인스턴트식품만 사 먹으면 삶을 가볍게 여기게 된다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따뜻한 심성도 자라나는 거라고, 하다 보니 주례사 내내 음식 얘기만 하고 끝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웬 꼰대가 와서 먹는 타령만 늘어놓다 갔다는 뒷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두 번째 주례에서는 '삶의 형식과 규범을 존중하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어차피 사람들을 모아놓고 결혼식을 하는 이유도 사회적 풍속을 존중하는 의미이니 결혼하고 나서도 삶의 내용만큼 형식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에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형식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충고도 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배우자 부모의 생일이나 기념일, 안부 등을 챙기는 것 등등. 그러나 이 주례사도 거센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은 정말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주고 싶은 것이었는데 '구제불능의 꼰대'였다는 평을 정보원에게서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김훈은 절망한다. 말해서 득보다 실이 많고, 이해받기란 지난한 일이구나.  

세 번째 주례사도 역시 비난을 받았는데,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 아니고 연민이라 했기 때문이었다. 오래 연애를 했던 커플이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은, 이른바 사랑이 사그러진 자리에 연민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무릎을 쳤다. 나도 평소 사랑보다 중요한 건 연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들어 아내를 만나 처음 '고노와다에 소주 한 잔'을 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한 번 이혼했던 사람임을 밝혔을 때, 순간 든 생각은 왜 이혼을 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연민이었다. 나는 나의 그런 마음 덕분이 우리 커플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사랑하며 잘 살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아내도 나에 대한 사랑보다는 연민이 더 클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김훈은 그날도 이렇게 서로를 가엾이 여기며 살아라, 라는 주례사를 늘어놓고 집에 가서 아내에게 그 내용을 얘기했더니 "오늘 결혼하는 애들한테 왜 그렇게 다 산 사람의 신음 같은 소리를 했느냐"라고 핀잔을 받았다고 했다.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에 나오는 짧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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