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을 다시 찾아보며 느낀 점
문학상은 수상작보다는 그전 작품이 너무 좋았는데 못 알아본 게 미안해서 뒤늦게 주는 상이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이 대표적이죠. 그러니까 어떤 작가든 하루아침에 짠! 하고 좋은 작품 하나 써서 상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부상길 역을 맡았던 최대훈이 백상예술대상에 나와 수상 소감을 얘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그동안 정말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씬 스틸러' 역을 맡아 왔는데요, 만약 최대훈이 올해 남자조연상 후보에만 오르고 상을 못 받았다면 어땠을까요? 아, 올해는 정말 시청자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많이 받았고 "학씨!" 같은 대사는 유행어까지 되었는데,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라고 실망했겠죠. 시청자들이나 일반 시민들도 "걔 정말 잘하던데, 이번엔 못 받았구나."라며 아쉬워했을 테고요.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그가 상을 받아서 너무 다행이었습니다. 이건 최대훈 개인의 영광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잘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을 있다'라는 믿음의 문제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튜브를 켜서 최대훈의 수상 소감을 다시 봤습니다. 그는 "이게 다 몰래카메라 같아요."라며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짓다가 어린이날 선물(마침 시상식이 5월 5일이었죠)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왜 자꾸 이렇게 눈물이 나지?"라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외치세요, 학씨!"라고 끝을 맺었습니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고 화면을 지켜보던 저도 마지막 멘트엔 저도 살짝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우리기 시상식을 보는 이유는 이런 것 아닐까요. 이렇게 솔직하고 감동스럽게 드러내는 연기자나 감독, 스태프들의 속내를 함축적으로 목격하는 즐거움 말입니다.
내친김에 '수상소감 레전드'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진선규부터 박은빈, 염혜란, 오정세 등의 수상소감을 보고 들으며 울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렸습니다.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 간 아내였습니다. 뭐 하고 있냐고 묻길래 수상소감 보면서 울고 있다고 했더니 아침부터 그러면 쓰냐면서 저를 나무랐습니다. 그때가 6시 50분쯤이었으니까요. 아내는 어제 이재명 후부 재판 연기 소식에 기뻐 친구들과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고 했습니다. 될 만한 사람 대신 엉뚱한 사람을 뽑으려 획책했던 사법부의 만행이 저지되었으니 기뻐할 만한 일이긴 했죠. 그런데 고기를 안 먹는 아내가 고깃집에 가서 거의 깡소주를 마셨을 생각을 하니 제 속이 다 쓰렸습니다. 남편은 아침부터 울고 아내는 술이 안 깬다고 투덜대고...... 생각해 보니 우리 집은 꽤 괜찮은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백상예술대상에서 《전, 란》으로 공동 각본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수상 소감도 다시 한번 들을 만합니다. 그는 영화 얘기를 하다가 현 시국에 대해 논합니다. "이 위대한 국민의 수준에 어울리는 지도자를 뽑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중략) 진짜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멘트는 참으로 '깐느박'스러운 절제와 소신이 빛나지 않습니까. 아, 이러다 수상소감 아카이빙 전문가로 거듭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