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헤다 가블러》리뷰
(*중간 이후로 스포일이 매우 많습니다. 연극을 보고 읽어주십시오)
LG아트센터가 개관 25주년 기념공연으로 제작하고 전인철 연출가가 올린 화제의 연극 《헤다 가블러》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 연극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주인공'이 꼭 필요한 작품이었구나. 왜냐하면 1890년 헨리크 입센이 창조하고 2005년 영국의 리처드 이어가 각색한 이 연극의 히로인 헤다 가블러는 자신을 신(神)이라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갑고도 도시적인 미모를 지닌 이영애가 필요했던 것이다. 수많은 우려 속에서도, 박찬욱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 정도를 빼면 언제나 '이영애스러웠던' 그녀가 과연 존재의 복잡성과 모순, 충동으로 가득 찬 헤다 가블러라는 문제적 캐릭터를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영애가 조금만 더 유들유들하게 헤다의 오만함과 숨겨진 불안을 래시가드 수영복처럼 전신에 착 붙이고 나왔으면 어땠을까, 정도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헤다는 신이지만 불행하고 권태로운 신이다. 유명한 장군의 딸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타고난 미모 덕분에 뭇 남자들의 구애를 받으며 살았던 그녀는 어느 멋진 저택 앞에서 충동적으로 결혼을 결심하고 조지 테스만이라는 선량한 학자와 신혼여행을 떠난다.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저택은 그러나 헤다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한다. 대학교수로 임용될 수 있다는 희망에 찬 조지는 알고 보니 고모들의 치마폭에서 놀아나는 유사 마마보이였고 저택 하나를 빼면 경제적으로도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말을 입에 다고 살던 헤다는 예전 애인 에일레트의 정신적 뮤즈 역할을 하고 있는 테아가 나타나자 눈을 반짝인다. 남편이 잠깐 좋아했던 여성이기도 하고("당신 만나기 전에 5분 좋아했어.") 학창 시절 그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태워버리고 싶다며 자신이 위악을 떨기도 했던 대상이 다시 불안한 사슴의 모습을 하고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머나, 반가워라. 심심하던 차에 너 잘 왔다.
테아의 등장은 자연스럽게 '불운한 천재' 에일레트의 등장을 부른다. 그리고 그 사이엔 관계의 삼각형, 즉 헤다와의 삼각관계를 끊임없이 원하고 추궁하고 가스라이팅하는 브라크 판사도 있다. 테아를 만나 심기일전하면서 정신을 차린 뒤 역작을 쓰고 있다는 에일레트가 애초에 술과 향락의 세계에 빠졌던 건 '자신의 얼굴에 권총을 겨누었던' 어떤 여자 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장군의 딸인 헤다가 아버지로부터 아름다운 권총 두 자루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뭐든 예뻐야 돼, 라는 '친절한 금자씨'의 대사가 떠오른다).
디오니소스(Dionys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와인과 축제, 황홀경, 광기, 예술, 해방의 신이다. 그는 아폴론(이성, 질서)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로, 인간의 본능, 쾌락, 감정, 죽음과 재생을 상징한다. 포도잎이나 포도덩굴은 그의 대표적 상징물인데, 헤다는 자신의 새 작품을 낭송하기 위해 친구들의 모임에 간 에일레트를 기다리면서 "10시가 되면 돌아오겠지. 디오니소스처럼 머리에 포도 잎을 두르고."라고 말한다. 무대엔 디오니소스의 대형 그림이 공연 내내 세워져 있다. 부르주아적 질서와 여성의 역할, 결혼의 틀 안에 갇혀 질식하고 있는 헤다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고 이제는 테아의 남자가 된 에일레트를 디오니소스로 여긴다. "아름답게 죽고 싶다"라는 그녀의 말 역시 디오니소스적 격정을 투영한다.
그런데 먼저 선수를 치는 건 에일레트다.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참지 못하고 술에 취해 복사본이 없는 원고(조지가 "인간이 문자를 발명한 이래 쓰인 최고의 글이 아닐까"라고 감탄했던)를 잃어버린 그는 실망한 나머지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물론 그의 원고를 손에 넣은 헤다가 순순히 그 원고를 돌려주기만 했다면 에일레트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태와 환멸에 젖은 신 헤다는 새로 온 하녀 베르트에게 춥다며 난롯불을 피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원고뭉치를 난로 가까이로 가져간다. 이 연극은 두 명의 등장인물이 죽는 36시간의 이야기다. 나는 마지막 헤다의 권총 자살이 항복이나 포기가 아니라 이 세상의 스위치를 끄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끝까지 오만해야 헤다 가블러스러운 것이다.
매체 연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이영애의 불안한 발성과 몸짓은 베테랑 연기자들의 합에 의해 기적적으로 수정되고 기운을 얻었다. 도중에 물구나무를 두 번 설 정도로 역동적인 연기를 펼친 조지 테스만 역의 김정호를 비롯 에일레트 역의 이승주, 브라크 판사를 맡은 지현준, 그리고 테아 역의 백지원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그동안 쌓아 올린 연기의 탄탄함과 카리스마가 빛나는 무대였다. 하녀 역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등장인물들을 클로즈업하는 '스테이지 카메라'를 맡았던 조어진의 존재도 든든하고 신선했다. 리처드 이어의 각색을 이어받아 미니멀한 무대를 창조한 전인철 연출의 고민 또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건 결국 '이영애의 헤다 가블러'로 남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공교롭게 이혜영의 헤다 가블러도 지금 공연 중이다. 50대의 이영애가 압도적인 미모의 헤다 가블러를 연기했다면 60대의 이혜영은 션경질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헤다 가블러를 연기하겠지. 둘 다 신혼여행에서 방금 돌아온 여주인공이라고 우기기엔 너무 연로하시지만, 그게 또 연극만 허락하는 상상력과 타협의 미덕 아니겠는가. 감히 추천한다. 이영애의 헤다 가블러. 영화《미션 임파서블》을 크리스토퍼 맥쿼리의 미션 임파서블이라 부르지 않고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이라 부르듯이 내게 이 연극은 앞으로도 '이영애의 헤다 가블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