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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담장을 둘렀다

잠깐 쉬었던 공사를 다시 시작하다

by 편성준


수요일 아침 일찍 목수님을 만나러 현장으로 갔더니 장 반장님이 드디어 담장을 치고 있었다. 지그재그 블록으로 쌓는 담장은 허리보다 조금 높은 높이여서 시야는 최소한으로 가리면서 길과 집의 경계 역할을 확실히 하는 장점이 있다. 아내는 담장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담이 생기니 진짜 집 같네."라고 말했다.

이번 이사에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순자와 우리의 화장실을 분리한다는 것이다. 순자는 모래 위에 일을 보면서 앞발로 모래를 뒤적이는 버릇이 있다. 자연히 모래가 순자 화장실 밖으로 튀어 욕실을 어지럽힌다. 욕실 안 벽에 빗자루가 늘 걸려있는 이유다. 그런데 이번에 내 집필실 올라가는 계단 및 빈 공간에 순자 화장실을 놓기로 한 것이다. 아내가 사다 놓은 순자 출입문을 목수님이 벌써 달아 놓았다. 아내와 목수님이 출입문을 시험하고 순자 화장실과 출입문 사이 사이즈를 검토하는 동안 나는 마루와 이 층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현관 신발장 앞 타일이 아직 덜 말랐다며 조심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실수로 한 번 밟아서 좋지 못한 소리를 이미 들은 상태였다.

아내가 목수님과 주방과 안방 커튼 다는 문제로 진지하게 얘기했다. 이번엔 아주 가벼운 블라인드와 천으로 창을 가릴 생각이므로 아내가 사 온 쇠줄 모양의 지지대로 충분할 것이다. 내가 천장에 돌아가는 실링팬은 어느 스위치로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목수님을 쳐다봤더니 아내가 한숨을 내쉬며 그건 리모컨으로 하는 거라고 말했고 목수님은 그저 웃었다.

집에서 가져온 그림들을 꺼내 어느 벽에 걸 것인지 정했다. 아내가 벽을 정해 그림을 들고 있으면 나는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그림 걸 곳을 다 정해 한꺼번에 사진을 목수님에게 보내면 목수님이 시간 될 때 못을 박아 걸어주면 되는 것이다. 아내와 사진을 다 찍은 뒤 목수님에게 그 얘길 했더니 "아니, 지금 달면 되지 뭐 사진을 보내요?'라며 나사못과 전동 드라이버를 들고 나섰다. 하하, 맞아. 그러면 되지.

아내가 늘 주방에 걸어 놓던 반달 그림과 12년 전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산 유화, 그리고 김영미 화백이 주신 원두막 그림을 걸었다. 서점 '책보냥'의 김대영 작가에게 산 고양이 그림과 김점선 화백의 '빨간 말' 그림은 다시 가져다 걸기로 하고 일단 자리만 잡아 놓았다.


목수님은 공사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처리해 주는 업자 때문에 전화기에 매달려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옆에서 들어봐도 엄청 불친절하고 일 처리하는 방식과 내용도 상식적이지 않아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울에서는 고민거리도 안 될 일들이 지방에서는 큰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이번 쓰레기 문제도 그런 경우였다. 전화로 입씨름을 하던 목수님은 결국 쓰레기를 트럭에 실어 서울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운반에 따른 연료비 등 손해가 발생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담장을 치고 그림을 거니 한결 제대로 된 집 같아졌다. 이제 아주 사소한 공사들만 남았다. 물론 담장 공사를 하고 있는 장 반장님에게 와서 '왜 대문을 이쪽으로 안 내고 저쪽으로 내냐?'라며 시비를 거는 이웃 할머니가 게시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가 책에 썼듯이 그분들은 '심심하던 차에 우리가 나타나 신이 난 것'뿐이다. 다음 주엔 드디어 이사다. 이사 이후에도 또 할 일과 신경 쓸 일이 많겠지만 아무튼 또 한 단락 넘어간다. 뭐 하나 공짜로 넘어가는 일은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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