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토지』를 읽으며 생일 축하를 하는 사람들>

독하다 토요일 간단 후기

by 편성준


독토, 즉 독하다 토요일은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한국소설을 읽는 친구들의 모임인데(어느덧 8년이 됐습니다) 어제는 멤버 중 생일을 맞은 분이 있어서 잠깐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박수도 쳤습니다. 제가 기타 치며 생일 축하 노래도 같이 불렀는데 그건 프라이버시라 못 올리겠습니다. 하하.

이번 시즌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21권을 완독하기로 했으므로 부지런히 읽어야 합니다. 어제는 5권부터 8권까지 읽고 와서 각자 느낀 점을 얘기 했습니다. 저는 다른 책들 읽고 강의안도 만들고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금요일에야 6권을 읽기 시작했는데 서희와 길상이가 결혼 문제로 고민하고 서로 번민하는 가운데 거복이가 김두수라는 이름의 밀정으로 용정에서 활동하는 장면들이 겹쳐 매우 흥미진진 했습니다.


저는 길상이와 좋아지내던 과수댁을 찾아갔던 서희에게 여관 주인이 아는 척 참견을 하자 "방자하기가 들여우 같구먼."이라 서슴없이 내뱉고 안으로 들어가는 서희의 그 한 장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그렇듯 박경리는 지식인부터 일자무식 농사꾼이나 하인까지 그 캐릭터에 꼭 맞는 대사를 구현합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 윤씨 부인마저 잃은 채 혼자 용정에 와 공노인을 만나 사업가로 변신한 서희는 서늘한 미모에 걍팍한 성격을 가진 스무 살 청년(처녀)으로 자라납니다. 찬바람 쌩쌩 부는 서희의 성격을 이처럼 잘 소화해 낸 대사가 있을까요(아, 너무 흥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혜자 씨가 마침 8월 말부터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토지》를 재방송 한다는 소식을 다시 알렸습니다.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그때 유해진이 평산과 두수 일인이역을 맡아 대단히 화제였던 걸 기억하고 있다 합니다. 2004년도에 방영되었다고 하죠.


이번 시즌에 새로 합류한 소열 씨가 '토지'는 앞 부분이 정말 재밌는 거 같다고 하길래 박경리 작가가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듣고 자란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많이 녹여졌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소열 씨가 동의하면서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와 『사금파리 한 조각』 등을 쓴 린다 수 박도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라며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할머니 얘기가 나오면서 요즘 젊은이들과의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대화, 세계관 등에 대한 반성과 성토가 쏟아졌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에 나오는 작은 에피소드를 소개했고요. 소열 씨의 "어른들이 너무 공감만 해서 키우는 바람에 망했다"라는 말은 우스우면서도 슬펐습니다. 내 아이는 무조건 보호하며 키워야 한다는 염려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보니 따끔하게 충고를 던질 수 있는 '어른'이 사라졌다는 것이죠. 권위주의는 사라져야 하지만 '권위'까지 놓쳐버린 건 아닌지 하는 반성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민속학을 공부하는 효성 씨는 '토지'를 읽다 보면 감탄할 부분이 너무 많다며 특히 6권에서 "'이 선생(이동진)은 커다란 광주리 같고 권 선생은 놋쇠주발 같소이다'라고 한 장면을 꼽았습니다. 무연하게 나오는 대사나 설명 속에도 시대상을 바탕으로 한 당시의 문화와 민속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재희 씨 역시 "소설가는 진정한 창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합세했습니다. 박경리 선생이 이 소설을 쓸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어서 자료를 모으고 규합하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미세한 개인사부터 세계 정세까지 이토록 잘 엮어서 소설을 쓸 수가 있느냐는 감탄이었습니다. 역시 좋은 이야기는 본 줄기 뿐 아니라 곁가지까지 풍부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깨달을 수 있는 리뷰였습니다.


두 시간 동안 박경리 선생의 작품 이야기는 물론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나누고 약속이 있던 혜자 씨와 감기에 걸린 하늬 씨는 먼저 갔고 나머지 인원은 서촌에 있는 을밀대에 가서 냉면과 만두를 먹었습니다. 음식값은 생일을 맞은 재희 씨가 냈고 왼발에 반깁스를 한 효성 씨는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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