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의 선한 인성과 성실함이 보이는 소설

차인표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by 편성준


최근 황순원문학상 신진상을 타서 화제가 된 배우 차인표의 소설이 궁금해 그의 데뷔작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2009년 발표 당시 제목은 '잘가요 언덕'이었음)을 읽었다. 1931년 백두산의 호랑이 마을을 배경으로 촌장님의 손녀인 순이와 호랑이 사냥꾼 황 포수의 아들인 용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존댓말로 쓰였다. 유명한 탤런트가 쓴 소설인데다 존댓말로 이루어져 있으니 솔직히 처음엔 믿음이 가지 않았다. 더구나 분위기나 내용도 매우 동화적이다. 다만 중간에 일본군 소위 후보생 가즈오 마쯔에다가 일본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간간이 나오는 걸 보고 이 작가가 플롯에 대한 기본기는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이 진가를 드러내는 건 용이가 백호를 찾아 아버지와 함께 떠나고 7년 후 마쯔에다가 대위가 되어 호랑이 마을에 다시 돌아오고 나서부터다. 포악한 일본군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마쓰에다는 마을 사람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킴으로써 호의를 얻는다. 그는 아름답고 슬기로운 처녀 순이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더욱 몸가짐을 가다듬게 되고 급기야 폭우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는 등 농사일을 도우며 마을 사람들과 화합한다. 하지만 상부의 명령으로 자신이 실시했던 '인구 조사'가 결국은 순이를 정신대로 끌고 가는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조선인 여자 인력 동원 명령서는 마을에 하나뿐인 처녀 순이를 징집하기 위해 내려온 문서였던 것이다.


이 소설은 1997년 차인표가 위안부로 강제 징용되어 캄보디아로 끌려갔던 훈 할머니를 만나고 나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A4 스무 장 정도의 초고를 국어선생님 하셨던 장모님이 읽고 맞춤법을 수정해 주었는데 노트북이 고장 나는 바람에 다 날렸다. 그러나 차인표의 마음속엔 언제나 이 이야기가 꺼지지 않고 살아 있었다. 2006년 소설을 다시 써보기 위해 백두산에 다녀온 후 이번엔 친어머니에게 원고를 보여 드리며 피드백을 받았고 당시 열한 살이던 아들에게도 읽혔다. 이렇게 가족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면 쓴 소설은 2009년 드디어 '잘가요 언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잘가요 언덕은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를 잡으러 떠나는 포수들을 배웅하던 언덕의 이름이다.


차인표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스타 배우였다. 그러나 소설가로서는 매우 길게 절치부심의 시간을 가졌다. 정식으로 소설을 배운 적이 없었던 그는 독학으로 소설을 썼다. 변호사도 소설을 쓰는데 탤런트라고 못 쓸 게 없다는 생각도 용기를 주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직업상 자주 읽을 수밖에 없던 대본애서 소설과의 공통점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이었다. 형식은 다를지언정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건 마찬가지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소설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각적인 느낌이 강하다. 마자막에 용이가 일본군대를 상대로 벌이는 전투는 마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영웅 서사의 분위기마저 띤다. 그렇다고 심각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던 소설은 가끔 하늘을 나는 제비의 눈으로 시점이 바뀌기도 하는데 거기에 의외의 유머도 있다.


이 소설은 절판되었다가 출판사 해결책에서 재출간되고 옥스포드대학에서 한국어 교재로 채택되면서 다시 화제가 되었다. 아마 꼭 알아야 할 역사를 폭력적이지 않고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장으로 쓴 점이 '필독서'라는 영예를 안겼을 것이다. ,옥스포드대 교재 선정부터 황순원문학상 수상까지 차인표 작가의 뒤늦은 선전을 축하한다. "글 쓴다고 가방 메고 나갔다가 5시만 되면 배 고프다고 돌아오더니"라는 아내 신애라 씨의 말에서 그의 성실함과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치인표의 '착함'이다. 정신대 문제를 다루면서도 인간의 선함을 믿는 따뜻한 인성이 글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는 메타인지 능력도 뛰어나 자신을 비웃을 줄 안다. TV에 출연해서 연기력 논란이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농담도 거침없이 하는 걸 자주 보고 정신적으로 매우 성숙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소설 『인어 사냥』과 『그들의 하루』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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