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전통시장에 가서 있었던 일
아내는 보령으로 이사를 온 뒤로 전통시장에 자주 간다. 장이 서는 3일이나 8일이 되면 "우리, 시장이나 갈까? 괜히."라며 나를 쳐다본다. 집 가까이엔 중앙시장, 한내시장, 동부시장, 현대시장 등이 모여 있고 좀 멀리엔 웅천시장, 대천항수산시장이 있다. 그러니까 총 6개의 시장이 보령에 있는 것이다. 3일인 어제도 중앙시장에 갔다. 특별히 살 건 없지만 시장에 가면 제철 채소나 과일, 생선이 뭐가 나오는지 알 수 있어서 재밌다고 한다. 차를 보령문화의전당 앞 주차장에 세우고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주차장 주변 길엔 차들이 많이 서 있다. 서울과 지방이 다른 점 중 하나가 주차 문제다. 서울은 어디든 주차 인심이 사나워서 자기 집 앞에도 차를 세우기가 힘들 지경인데 지방은 길을 가다 아무 데다 주차를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차장이 있어도 이용하지 않고 주차장 근처 길에 그냥 세워두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뭘 주차장까지 가? 여기다 세우지' 하는 마음인 것 같다.
구경이나 하자고 하던 아내는 집에 김치가 다 떨어졌으니 파김치나 담가야겠다며 쪽파를 한 묶음 샀다. 나는 지갑을 꺼내 아내에게 현금을 건넸다. 돈을 내니 아저씨가 덤으로 한 움큼을 더 넣어주었다. 사는 김에 배추도 좀 사고 콩도 샀다. 한 할머니가 깐 콩 옆에 꼬투리째 붙어 있는 서리태를 놓고 있길래 얼마냐고 물었더니 만 원이라고 했다. 꽤 묵직했지만 아내는 막상 까보면 양이 얼마 안 될 거라고 속삭였다. 장에 나와 물건을 파는 상인들 중엔 젊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할머니들이다. 아내는 시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이제는 척 봐도 농사지은 걸 가져온 할머니인지 그냥 고용된 할머니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고용된' 할머니들은 콩이나 가지, 오이, 호박 같은 걸 앞에 조금 놓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다 팔고 나면 주인이 세워 놓은 트럭을 타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간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할머니의 연기에 속아주며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집에 와 서재에서 잠깐 일을 하다가 아래층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는 아내에게 갔다. 아내는 파김치를 담그고 나는 콩을 깠다. 콩 꼬투리가 단단해서 잘 까지지 않았다. 30분 정도 쉬지 않고 콩을 까다가 오른손 엄지손톱이 들려 피가 났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손톱에 알코올을 들이붓고 반창고를 붙였다. 내가 까 놓은 콩들을 보며 아내는 할머니에게 또 속았다며 웃었다. 역시 양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마트에 가면 훨씬 좋은 농산물을 많이 팔지만 그래도 시장에 가는 재미가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몇 달 전 아내가 오은 시인에게 글쓰기를 배우러 간 날 대학로에서 있었던 얘기 해준 게 떠올랐다. 글쓰기 수업 마지막 날 회식 장소인 노래방으로 가는 골목에 한 할머니가 시든 야채를 놓고 파는데 상태가 너무 나빠서 도저히 살 수 없었다고 한다. 아내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면서 '혹시 오은 시인이 저거 사 가지고 오는 거 아냐?' 하고 걱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가 오 시인이 시든 야채가 든 봉지를 들고 교실로 들어 오더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팔던 야채를 어리숙한 남자가 몽땅 샀으니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일찍 귀가하셨을 것이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언제나 봉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게 좋다. 약아빠진 사람보다는 좀 어리숙한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도 '주는 사람(Giver)이 더 성공한다'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나는 성공과는 상관없이 그냥 마음 약한 사람이 좋은 것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