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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령 생활

우연히 보령

갑자기 찾아오는 손님이 더 반가운 이유

by 편성준

오늘 오전, 아내의 지인이 갑자기 놀러 오셔서 단골 식당에 가서 같이 밥을 먹고 해저터널을 지나 원산도에 있는 커피숍에 다녀왔다.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대천해수욕장에도 잠깐 들러 썰물 해변을 걷다가 헤어졌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바다를 봐서 가슴이 뻥 뚫린다고, 너무 좋다고 하셨다. 우리도 이렇게 갑자기 손님이 오면 모든 일을 제쳐 놓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미리 초대를 하거나 날짜를 잡는 것보다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손님이 우린 더 반갑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할 것 없이 그냥 반가워하며 온전히 하루를 내주기만 하면 되니까 그럴 것이다.


보령에서 오래 살 거라고 하면 아직은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언제든 핑계만 생기면 도망갈 것이라 여기는 게 당연하다. 실제로 누가 나에게 백억 원을 줄 테니 다른 데 가서 살자고 꼬시면 나는 미련 없이 보령을 떠날 것 같다. 아주 예쁜 여자가 나타나 다른 데 가서 살자고 하면...... 음, 아깝지만 아내가 있어서 그건 안 되겠다고 말해야지. 아무튼 보령에 온 건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그 우연이 뿌리를 내리고 잎과 꽃을 피우면 결국 필연이 될 것이다.


집으로 들어가는데 앞집 할머니가 보이길래 인사를 드렸더니 아내와 내게 다가와서 공연히 이런저런 말을 시켰다. '도시가스 사건' 이후로 몇 달 만에 나누는 대화다. 나는 말을 섞기 싫어서 아내에게 할머니를 넘기고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저 할머니가 드러누울 기세로 도시가스 설치는 안 된다고(공사하다가 자기 집 대문이 무너질지도 몰라서 그렇다고 했다. 정작 자신은 도시가스를 설치해 쓰고 계시면서) 반대를 해서 벽 옆에 대형 LPG 통을 설치하고 산다. 아내에게 무슨 얘길 하시더냐고 물었더니 "몰라, 자꾸 말을 시키는데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어."라고 한다. 앞으로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말아야겠다. 할머니, 저희가 좀 맹하고 허황돼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만만하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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