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프로젝트의 《유령들》
보통 연극과 달리 극이 시작되면서 손상규·양조아·양종욱 세 배우가 사방으로 노출된 무대에 나와 인사를 하고 사전 설명을 해주는 게 신선했다. 심지어 양종욱 배우가 맨 앞 열에 앉은 분들은 다리를 쭉 펴도 된다고 말하는 동안 손상규 배우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쭉 펴는 시범을 보이기도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이렇게 친절하고 열려 있다는 건 작품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흑백으로 통일한 의상은 모던하고 절제된 느낌과 더불어 시대가 느껴지지 않도록 신경 쓴 의도가 보였고 미니멀한 무대도 같은 컨셉이었다.
1881년 노르웨이의 알빙 부인의 대저택이다. 내일 고아원 개소식을 앞두고 기뻐하는 알빙 부인 앞에 행사 진행을 맡은 만데르스 목사가 나타나고 파리로 그림 유학을 갔던 아들 오스왈이 나타나고 하녀 레지나 부녀가 나타나고 모든 사람에게 칭송받던 알빙의 지저분한 과거도 함께 나타난다. 시작할 때는 무척 고전적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밝혀지는 추악한 진실들이 마치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연극은 제목과 달리 '유령'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많은 비밀과 불합리가 쌓여 만들어진 존재인지를 알려주고, 아울러 각자 짊어진 운명을 피해 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독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손상규 배우야 뭐 더 이상 말을 보탤 필요가 없는 최고의 배우이고(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에서 봤을 때도 너무 반가웠다) 알빙 부인 역을 맡은 양조아 배우의, 결코 크지 않지만 잘 들리는 대사 처리와 자신의 배역을 완벽하게 장악한 연기 역시 최고였다. 만데르스 목사와 레지나 역을 번갈아 맡았던 양종욱 배우의 연기 역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사방에 관객이 지켜보는 오픈 무대에서 배우들이 대사와 지문까지 함께 처리하는 형식이었는데도 극히 자연스러웠던 건 연출과 연기자의 합이 그만큼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양손프로젝트는 완성된 작품을 만드는 팀이라기보다는 작업하는 과정을 찾는 일종의 워크숍을 통해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도달한 것을 무대에 올린다고 한다. 작품에 따리 1인극, 2인극도 했는데 이번에 김지혜 연출을 포함해 4인 '완전체'로 만든 작품이라 그런지 막장 드라마스러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역동적이고 세련된 작품이었다. 협업의 시너지가 제대로 이루어진 경우라 할 만하다.
양손프로젝트는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하는 '입센 3부작'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작품을 계속 지켜보고 싶은 것은 물론 헨리크 입센의 원작들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생각해 보니 『인형의 집』만 알고 있었고 지난번 본 연극의 원작 『헤다 가블러』도 사놓고 읽지는 못했다. 이 정도로 다양한 세계를 가진 대 작가인 줄 몰랐던 것이다. 뒤늦게 반성한다. 워낙 핫한 배우와 연출의 작품이라 당연히 매진될 걸 예상하고 아내가 지난 1월에 미리 예매를 해 놓아 볼 수가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로비에서 아내가 유진목 시인을 잠깐 목격하고 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사라졌다고 하고, 인스타그램을 보니 『오춘실의 사계절』을 쓴 김효선 작가도 오늘 이 작품을 보았다고 한다. 나와 윤혜자의 선택에 이 분들의 취향까지 얹어 이 연극, 그리고 양손프로젝트 모두 강추한다. 2025년 10월 26일까지 LG아트센터 U+스테이지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