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리뷰
한강의 소설 「여수의 사랑」엔 자흔이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기쁠 흔(欣) 자예요."라고 조금도 기쁘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끝내 소설 속에서 사라지는 그녀의 슬픈 삶이 잊히지 않았다. 영화 《세계의 주인》의 주인공 이름이 '주인'인 것을 보면서 문득 자흔이 생각났다. 고교생인 주인도 자흔처럼 자신의 이름대로 살아갈 수 없기에 그 반발로 감독이 저런 이름을 지어준 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자흔과 달랐다. 열여덟 살 고교생인 주인은 어렸을 때 있었던 나쁜(?) 사건 때문에 상처받거나 주눅 드는 삶을 거부한다. 그래서 그는 연애도 열심히 하고(키스를 더 열심히 하나?) 봉사활동과 태권도에도 애정을 쏟는다. 그런 그가 같은 반 친구인 수호가 성범죄자 출소 반대 서명을 받으러 다닐 때 그 문서에 들어 있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쳤다’라는 표현이 잘못된 거라며 서명을 거부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정당하기까지 한 그 표현이 주인에겐 왜 납득이 안 되는 걸까? 이 사건은 주인이 자신을 규정하려는 '게으른 상식'을 거부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다.
한국 영화 최초로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인 플랫폼 부문에 공식 초청된 이래 계속해서 세계 유수 영화제의 부름을 받고 있는 이 영화는 이렇게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여고생 주인이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에 불참하면서 의문의 쪽지를 받는 이야기다. 평범한 고교생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영화는 주인에게 오는 편지를 족족 가로채 침대 밑에 숨기는 어린 남동생과 남몰래 알코홀릭이 되어 간경화 판정을 받고 가끔 현관에 '오바이트 흔적'도 남기는 엄마, 그리고 산속에 칩거하면서 주인의 전화와 문자를 씹는 아빠 등이 차례로 나오면서 가족에게 드리워진 어둠의 실체가 드러난다(이후로는 가벼운 스포일이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언론과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윤가은 감독은 《우리들》과 《우리 집》 이후 '여성으로 태어나 몸으로 부딪치는 사랑과 성에 대한 경험'을 있을 법한 요소들로 전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처음엔 꽤 풋풋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여성의 성과 사랑 밑바닥엔 어떤 두려움이나 공포, 불안, 걱정 등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타인이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함부로 망가졌다고 말하는 것도 안 된다'라는 생각이 지금과 같은 영화를 만들게 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잘 만들었다는 것 말고는 윤가은의 이전 영화들과는 공통점이 별로 없는 편이다. 두 작품보다 훨씬 논쟁적이고 세다. 그래서 좋다. 다만 주인이 얘기 말고도 미도(고민시)의 재판 이야기나 수호(김정식)의 동생 목에 난 상처의 가해자를 찾는 이야기 등 '레이어'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첫 장면으로 진한 키스신이나 주인이 짝이 그리는 야한 일러스트 등을 보여준 것도 '의도'가 너무 많이 들어간 느낌이었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키스를 좋아하면서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주인은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였고 그러면서 계속 새로운 남자친구와 키스를 나누는 건 또 다른 '도구화'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다. 아마도 영화에 쏟아지는 주변 사람들의 격찬을 너무 많이 듣고 가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남동생이 숨긴 편지의 정체를 관객들이 알게 되었을 때, 침대 밑에서 그 편지들을 발견하고 주인이 난리를 치고 화를 냈다면 좀 촌스러운 그림이 되었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거실로 나가 사람들과 섞여 들어가는 게 너무 멋졌다. 함께 영화를 본 아내는 편지 겉봉의 필체가 너무 유려했던 게 더 끔찍했다고 한다. 그 정도 글씨라면 '멀쩡한 지식인'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듣고 보니 그랬다. 윤가은 감독의 디테일이 빛나는 장면이었다. 자동세차장을 엄마와 딸의 해방구로 삼은 것 역시 훌륭했다(“한 바퀴 더 돌까?” 같은 대사). 서수빈과 장혜진 두 배우는 이 장면을 찍고 탈진했다고 했지만 아마 시사회에서 보고 너무 뿌듯해했을 것이다. 어린 동생이 '사라지는' 마술쇼를 하는 장면도 주인에게서 나쁜 기억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감독의 마음이 느껴져 짠했다. 나는 주인의 전 남자 친구들이 주인을 결코 비난하지 않는 것조차 좋았다. 이런 마음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의문의 쪽지 내용이 바뀌는 것으로 이어져 감동을 준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선 뒤 많은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좋은 작품은 개운한 느낌을 주기보다는 이렇게 뭔가 자꾸 곱씹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주변의 극찬에 비하면 극장 관객 수가 너무 적다. 끼리끼리 아는 사람들끼리의 칭찬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가 닿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연상호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보법이 다른 윤가은 감독님의 걸작”이라고 평했고 박정민 배우 역시 “엄청난 것이 나와버림”이라는 상찬을 내놨다. 이런 추천들이 멀티플렉스 운영자들의 귀에도 들어가 상영 횟수를 더 늘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좋은 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좋은 사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