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와 ‘헤어질 결심’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다시 읽으며 든 생각들

by 편성준


아침에 일어나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을 땐 몰랐는데 다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 보니 소설이 참 슬프다. 나는 특히 헤어진 세 살 연하 애인 헌수와의 대화를 기억하는 은미의 이야기 중 '긴 시간 엄마 옆에 머물며 내가 가장 그리워 한 사람은 헌수였다. 나와 결혼할 뻔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고독을 겪은 사람이라서 그랬다'라는 문장이 아팠다.

이 소설은 킴 딜과 로버트 폴러드 버전의 'Love Hearts'를 들으며 'I'm young'을 '안녕'이라고 우기던 은미 때문에 생겨난 제목이다. 암 영은 안녕이 아니며 노래를 부른 뮤지션 킴 딜의 성도 한국의 김 씨가 아니라 영어 킴벌리에서 온 거라 알려줌으로써 여자친구를 무안하게 했던 헌수는, 헤어지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병원에서 엄마를 간병하고 있던 은미에게 만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만약 지금 너를 다시 만난다면 그건 안녕이 아니라 '암 영'이라고 고쳐주는 대신 그래, 가만 들어 보니 그렇게도 들리는 것 같다고,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힌 한국어,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란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작게 훌쩍인다.


소설에는 코로나 19 시대를 맞아 온라인으로 영어 강사들과 대화를 하며 학습하던 은미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다 포기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자신이 생각한 걸 뉘앙스까지 정확히 전달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그런데 그게 외국인이라서만 그럴까. 모국어로 말해도 쉽게 전해 지지 않는 말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은미는 우리말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도 '평안하시냐' 혹은 '평안하시라'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영어 강사 로버트에게 알려준다.

외국인 영어 강사를 소설 속에 등장시킨 것은 이런 언어의 한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라는 생각을 하면서 김애란이라는 작가가 얼마나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인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을 볼 때도 새들에게 "그 형사님의 마음을 가져다 주렴"이라고 한 탕웨이의 말이 번역기에서는 '그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줘'로 변하는 걸 보고 전율했는데. 그래서 작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된 거겠지 생각하니 이렇게 좋은 소설을 알아보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 역시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 책이나 꺼내 읽는 편인데 오늘은 그게 김애란의 소설집이었다. 읽고 나서 뭔가 깨닫거나 기분이 좋으면 이렇게 뭐라도 써놔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그 기억이 오래간다. 기분 좋았던 기억, 신기했던 기억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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