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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01. 2019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다 - [당신이 옳다]

안산 에이스병원 독서모임 ‘성장판’ 그 첫 번째 이야기


안산 에이스병원 정재훈 원장님과의 개인적인 인연 덕분에 지난달에 병원 로비에서 직원들을 모시고 글쓰기에 대한 짧은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직장인들이 글을 쓰면 왜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강의로 풀어본 것이었습니다. 그 강의 이후 병원 안에서 결성된 독서모임 '성장판'의 진행을 세 번에 걸쳐 진행하기로 했었죠. 어제인 10월 31일 저녁 6시, 그 첫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독하다 토요일'이라는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는지라 이번 모임 역시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첫 번째 책은 정혜신 선생이 쓴 [당신이 옳다]였습니다. 직장에서 아픔이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특히 많이 만나야 하는 병원 클루들과 함께 읽기엔 참 적절한 책이었습니다. 저녁 6시에 병원에 도착해 일과시간을 마친 직원 다섯 분을 지하 1층 작은 회의실에서 만났습니다.

먼저, 외래 직원이라 밝히신 분이 자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싸우고 돌아온 날 마침 책 앞부분에 나오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나한데 그렇면 안 되지. 엄마는 내가 걔랑 왜 싸웠는지 물어봐줘야지."라고 했던 이야기를 읽었다고 하며 참 공감을 많이 한 대목이라 말했습니다. 다른 분은 한때 한강대교를 갈 정도로 고민이 많았을 때 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간절히 찾고 있던 것 아니었나 하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자신은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공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 '충조평판'이었구나 반성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분은 학교 다닐 때 때 술을 마신 게 적발되어 경찰이 집으로 연락을 해왔을 때 어머니가 무조건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 '니가 얼마나 힘이 들면 술을 다 마셨겠냐'라고 위로해 주셔서 고마웠다고 말해서 다들 멋진 어머니라고 박수를 쳤습니다. 책에 소개된 장하나 의원의 출산 우울증 사연은 반전이 있어서 소름이 돋았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저는 작년에 온에어 되었던  자살예방 공익광고 내용이 '자살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이에게 신호를 보내는데 사람들이 그걸 놓친다'였다고 하면서 누군가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임을 얘기했습니다. 토머스 하디가 쓴 <환상을 좇는 여인>이라는 중편소설에도 그런 이유로 죽는 소설가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더니 다들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조금 걱정도 했었는데 막상 책에 대한 각자의 소감부터 풀어나가자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과 자신의 이야기가 섞이며 고개를 끄덕끄덕할 만한 에피소드들이 쏟아졌습니다. 책을 무심코 읽다가 정독을 하고 싶어서 메모를 하며 읽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분이 그때 쓴 메모를 읽어주셨는데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어서 모두들 감탄했습니다. 저도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게 된 사연과 전에 친구와 동업할 때 힘들었던 점 등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독하다 토요일에서처럼 여기서도 '세줄 평'을 한 번 써보자고 하고 십 분간 시간을 드렸더니 다들 멋진 리뷰를 써주셨습니다. 제가 먼저 써 온 세줄 평을 읽었고 이어 다른 분들도 차례로 본인이 쓴 글을 직접 읽어주셨습니다. 저는 놓칠세라 그 부분을 녹음했다가 오늘 다시 들으며 타이핑을 했습니다. 궁금하시죠? 제 것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옳다 세줄 평 :

"누군가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물어야 한다. 다만 건성으로 묻지 않고 정말 호기심을 가지고 사소한 부분까지 마음으로 느끼면서 세세하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옳다’고, ‘당신의 마음이 옳다’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그게 정혜신 이명수가 말하는 적정심리학이고 마음이 병든 주위 사람을 살리는 결정적인 한 마디다."  - 편성*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때 그 사람과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그 사람의 속마음까지 꺼내 듣고 싶다면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을 하기 전에 공감을 해주어야 한다. 끊임없이 질문해 주고 들어 주자. 마치 내가 정혜신이 된 것마냥." - 인소*

"충조평판은 금물이라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서 반성하게 되었다. 또한 온몸으로 공감 또한 정말 힘들다. 정말 제대로 된 공감 실천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듯하다." - 박민*

인용 : "파도에 떠내려가는 서핑보드 위의 사람을 바라만 보던 나에게 당신이 옳다고 말해줬다. 서핑 보드 위에 올라가서 같이 출렁이고 호흡하라고. 그게 바로 공감이라고. " - 정유*

"온 힘을 다해 공감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사람은 살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진실로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살리는 의료인으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도 공감이 꼭 필요하다. 마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CPR처럼 심리적 CPR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이걸로 나도, 그리고 너도 구하고 싶다. - 조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선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늘 있는 법입니다.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모임은 모두 세 번 열기로 했는데 다음 달엔 <아무튼 술>이나 <아무튼 망원동>처럼  '아무튼 시리즈' 중 마음에 드는 제목 한 권을 골라 읽고 모여서 얘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12월에는 [90년대생이 온다]를 읽기로 했구요. 사실은 '90년대생'이 11월 책이었는데 내용이 다소 무겁다고 해서 그럼 '아무튼 시리즈'부터 읽으면 되지,라고 해서 일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90년대생이 온다]를 읽으면서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을 함께 읽는 것도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두 책 다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을 통찰력 있게 바라본 책이라 생각해서였습니다.

이번엔 제가 갔고 다음 달엔 윤혜자 씨가 가서 진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11월 한 달간 제주도에 가서 있기로 했으니까요. 회원들이 제주도에서 좋은 글 많이 쓰라고 따뜻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12월엔 저와 윤혜자 두 사람이 다시 함께 올 것이라 약속을 드렸습니다. 좀 웃기긴 합니다. 이건 뭐 부부사기단도 아니고. 하하. 간단히 써본 독서모임 성장판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12월에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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