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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03. 2019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다른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다시 태어난 정유미와 영화에  대한 댓글들


저는 김태용의 [가족의 탄생] 때부터 정유미의 열혈팬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마스크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잘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엉뚱하고 마이너 한 감성을 풍기는 점이 정유미라는 배우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습니다. 김정은의 어린 역으로 나왔던 [사랑니]도 좋았고 [내 깡패 같은 애인]이나 [우리 선희] 때도 좋았습니다. 심지어 단편인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했죠. 그런데 JTBC의 <윤식당>에 출연하면서 완전 셀럽으로 부상했고 그 직후 커피 광고의 메인 모델을 따낸 정유미에겐 더 이상 예전의 독특한 아우라는 없었습니다. 전 그에게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러다가 [82년생 김지영]을 보았습니다. 거기엔 정말 1982년생 김지영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을 살아온, 그래서 이성복의 시처럼 ‘아픈데도 아픈 줄을 모르는’ 30대 후반의 경력단절 애엄마가 스크린 안쪽에 엉거주춤 서 있었습니다. 머리를 질끈 묶고 아이를 재우고 빨래를 개다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정유미는 더 이상 윤식당이나 커피 광고에 나오던 셀럽이 아니고 그냥 1982년생 김지영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단단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서사가 너무 길고 잔잔했으며 조연들은 연기나 대사가 서툴렀습니다. 주인공들을 제외하면 외모나 풍기는 이미지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워낙 원작 소설의 힘이 셌고 정유미나 김미경의 연기가 사람을 끌어들였습니다. 특히 정유미가 엄마를 보고 “미숙아...”라고 부르는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 경악하는 표정으로 딸을 쳐다보던 김미경의 얼굴은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도 약간 듣긴 했지만 작품을 둘러싸고 안티 논쟁이 심했던 모양이었습니다. 극장에서 나와 브런치에 누가 올린 리뷰를 읽어보니 주연배우 정유미에 대한 비난도 생각보다 심했다고 합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이십 대 남자 사원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너도 평소에 여자들한테 역차별을 당하며 산다고 생각하니? 돌아온 대답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럼요. 여자들은 군대도 안 가고 남자들에 비해 이런저런 혜택도 많이 받잖아요. 근데 취업이나 결혼할 때도 그렇고...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요." 혹시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는 생각은 안 해보았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런 생각을 해볼 계기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지겨워 하거나 노여워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당장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페미니즘은 여성을 더 위에 두고 떠받들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남자든 여자든 동등한 위치에서 출발하자는 얘기에 다름 아닙니다. 왜 여자들은 밤에 집에 올 때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지, 아니 왜 역사적으로 남자 황제나 왕이 더 많았고 지금도 남자 주방장, 남자 국회의원이 더 많은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비난 댓글을 달거나 그 의견에 눈감는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싫다고 눈을 감지 마십시오. 눈을 감으면 당장 세상은 편해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눈을 감는 순간 누군가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 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눈을 뜨고 자신과 상대방의 내면을 들여다보십시오. 아직도 당신 마음속에 82년생 김지영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데도 복에 겨워 투정을 부리는 맘충인가요?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서 페미니즘에 관한 책 딱 한 권만 사서 천천히 읽어보면 어떨까요. 거듭 말하지만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다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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