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단톡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

by 편성준


제가 가끔 지인들에게 농담 삼아 엄포를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톡방에 '오늘의 명언' 같은 걸 올리거나 명절이 다가오면 내게 폭포수나 계곡 배경으로 궁서체 시나 명언 따위를 보내오는 사람은 바로 차단할 거니까 알아서 조심하라고 말이죠. 제가 부리는 이 패악에 딱 들어맞는 방이 하나 있습니다.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초등학교 동창들이 만든 단톡방입니다. 사실 저는 5학년 때 전학을 갔기 때문에(그전엔 일산 옆 백마에 있는 백마국민학교에 다녔습니다) 아는 친구들이 많지 않습니다. 대학교 졸업하고 직장에 다닌 후로는 그 동네에 갈 일도 거의 없었고요. 그런데도 어느 날 그 단톡방에 초대되어 아침마다 원하지 않는 친구들의 소식과 안부를 접하고 있습니다. "춥다." "오늘도 수고해라." "굿모닝" 같은 짧은 인사말과 함께 등장하는 그림이나 동영상은 제가 그렇게 싫어한다는 명언 시리즈입니다. 떠오르는 해나 계곡의 물, 한 잔의 커피와 케이크 등이 주요 배경이고요. 인생이나 사랑, 우정에 대한 명언들이 그 그림 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음악도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날마다 구할까 싶은 정도로 대중 친화적(?)입니다. 미치겠습니다.


빨리 단톡방을 나와야지, 생각했습니다. 알람은 진즉에 꺼 놨기 때문에 새벽잠을 방해받지는 않습니다. 친구들의 톡을 읽기만 하고 인사는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제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도 없습니다.(네, 저 왕따입니다) 그래도 이 단톡방을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쩌다 뒤늦게 열어 보는 카톡방엔 촌스럽지만 성실한 '리추얼'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친구도 있고 전혀 모르는 친구도 있지만, 아무튼 모두 새벽부터 열심히 움직이는 그들의 '존재증명'이 여기엔 있습니다. 영하 15도의 날씨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단톡방에 인사를 남기는 한결같은 그들의 루틴에 제 마음속 얼음도 살짝 녹는 기분입니다. 제가 인정해야 할 건 좋으나 싫으나 저도 거기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은 이 단톡방을 가끔 들여다보면서 소박하고 촌스러운 친구들이지만 걔네들과 그냥 끊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요즘 읽고 있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이야기를 들려줘요』도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스트라우트 월드'의 결정체(출판사가 띠지에 쓴 카피) 같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밥 버지스나 루시 바턴, 올리브 키터리지와 제 친구 민석이 준성이, 광순이가 다른 사람들일까요. 인생은 누구나 험블파이입니다. 살짝만 들춰봐도 참 엉망인 제 인생을 그 단톡방이 위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초등학교 친구들이 새삼 고마워집니다. 신도초등학교 49회 친구들아, 단톡방에서 한 번도 인사 안 하고 나가지도 않는 성준이를 용서해라. 내가 인사를 하면 다들 한 마디씩 인사를 할 것 같아서, 내가 워낙 인기가 좀 있잖니...... 음, 미안하다, 아무튼 고맙고. 다들 건강해라(끼룩끼룩 소리 들리지? 내가 대천해수욕장의 갈매기 소리를 따다 BGM으로 좀 넣었다). 명절 연휴에 와서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지난해 감사했습니다. 아, 저 이런 상투적인 인사말 남기는 거 진짜 싫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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