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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11. 2019

평균 이하로 태어나도 평균의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샤워를 하다가 든 생각

1.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다가 욕실 안에 있는 플라스틱 동글 걸상 위에 주저앉아 발을 꼼꼼히 닦으며 생각했다. 발이 참 작구나...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덩치도 작은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손발이 유난히 작다. 그래서 군대 가서도 발에 맞는 군화가 없어 늘 곤란을 겪었다. 발길이 245cm. 대한민국 남자 평균 발 사이즈가 270 정도 된다고 치면 나는 분명 기준 미만이다. 한 군대 선임은 "군화는 작으면 볼품이 없어. 잘 빠진 군화 신으려면 발이 270은 돼야지."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럼 나한테 어쩌란 말이에요, 김 병장님이 내 발 사이즈 키워주시라도 할래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은 나를 때리거나 불이익을 줄 수도 있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종종 그런 적도 있었으니까. 예전에 대학 동아리 후배 중 군대에서 "이 새끼가 어디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봐?"라는 선임의 말에 "그럼 눈을 세모나게 떠요?"라고 했다가 몇 대 맞았다는 놈도 있었다.

2.

땅콩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골프선수 김미현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당시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할 때 무슨 땅콩바의 광고모델이었기 때문에 그의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 읽었는데, 한국의 기자들이 '오늘 반바지 입고 나왔냐?', '김미현 선수는 반바지 사서 입으면 긴 바지 되는 거 아닌가?' 등등의 질문을 농담이랍시고 하는 바람에 아주 미치겠다는 것이었다. 외국에서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그런 질문을 듣는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1990년대 말이었으니 지금에 비하면 엄청 '촌스러운' 시절이긴 했다. 설마 지금도 그런 질문을 하는 기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평균 이하의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얼마나 나아졌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남들보다 가난하게 태어나서, 남들보다 예쁘지 못해서, 남들보다 공부를 못해서 받는 불이익은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에서 그 차별과 손해를 이겨내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 나는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나 기본적인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이이말로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들보다 못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까지 잘 사는 세상을 바라진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망하길 바라지만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늘 승승장구한다는 게 문제다.

3.

아름다운 제주에 내려와 아침부터 이 무슨 쓸 데 없는 생각인가, 잠깐 반성을 했다. 스트레스 많기로 유명한 월요일 아침이다. 더구나 호사다마, 일이 많다는 11월 11일이다. 그러나 월요일도 오전만 지나가면 또 금방 간다. 다행히 월요일은 일주일 중 딱 하루뿐이다. 희망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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