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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01. 2019

비 오는 일요일 아침의 커피와 굴

아내 없이 제주에서 한 달 살기

비 오는 일요일 아침.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걷고 싶어서 우산을 쓰고 중산간 도로로 나왔다. 일요일 아침이라 문을 연 가게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배낭 안에 텀블러를 넣고 나갔다. 역시 도로에는 아무도 없었고 평소에 커피를 팔던 피자 가게도 닫혀 있었다. 그런데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빨간 벽돌 건물 커피집의 현관문이 열려 있고 현관등도 노랗게 켜져 있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현관에 서서 사장님을 불렀다. 문이 열려 있고 작은 소리로 음악이 켜져 있는데 사람은 없었다. 문만 열어놓고 어디 간 모양이다 하고 돌아서려는데 도로에서 사장님이 나타나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한다. "당연히 안 열었겠지 했는데 불이 켜져 있어서요."라고 말했더니 "아직 안 열었는데, 들어오세요. 커피 가져가시게요?"라고 묻는다. 아직 커피 머신 스위치도 켜지 않은 상태라 드립 커피로 해주겠단다.

나는 운동화를 벗고 안으로 들어가 기다리면서 가게 이름이 왜 '93brew'냐고 물었더니 커피 내리는 온도가 93도이고 또 사장님과 사모님이 모두 93년생이라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드립 커피는 좋으면서도 약간 섭섭한 게 너무 순하고 부드러워서요."라고 했더니 사장님도 "예, 바디감이 좀 떨어지지요."라고 동의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에티오피아 커피 어떠냐고 묻길래 나도 산미가 좀 있는 게 좋다고 했다. 텀블러에 커피를 넣고 뚜껑을 닫기 전에 한 번 맛을 보라고 나에게 주길래 한 모금 마셔 보았다. 따뜻한 신맛이 혀끝을 자극하며 온몸에 상쾌하게 퍼지는 느낌이었다. "좋은데요."라고 말하며 지갑을 꺼내자 "이건 그냥 서비스로 드리려고 했는데.”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화를 내며 오천 원짜리를 내밀었고 사장님은 "그럼 아메리카노 가격으로 해드릴게요." 라며 천 원짜리를 거슬러 주었다.  

집으로 들어와 스마트폰을 켜니 아내가 여수에서 올라온 싱싱한 굴을 넣고 끓인 미역국 사진을 올렸다. "굴 부자네!"라고 하는 나. "오면 해줄게"라고 하는 아내. 굴을 핑계로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의 중이염이 빨리 괜찮아져야 할 텐데. 사실은 굴보다 아내와 같이 일요일 아침에 자리에 누워 딩굴딩굴 게으름 피우며 노닥거리는 게 더 그리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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