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계간지에 덜컥 투고한 SF소설이 그 해 SF계는 물론 일반 문학상까지 받으면서 일약 주목받는 소설가가 된 민석은 그 뒤로 다니던 신문사 일에 치여 사느라 정작 주목받는 작품을 더 이상 발표하지 못하는 이름뿐인 작가가 되어버렸다. 이래서는 곤란하지. 내가 제일 행복한 시간은 소설을 읽거나 쓸 때인데. 민석은 어느 날 저녁 회사 앞 식당에서 뉴스를 보다가 혜성이 충돌하는 이야기를 하나 생각해 냈다. 혜성이 충돌해 지구가 멸망하는 이야기는 그동안도 수도 없이 많았지만 민석은 그런 디스토피아적 상상력보다는 지구 멸망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일반인들의 성숙한 자세에 주목하는 휴먼 드라마를 한 번 써보기로 했다. 주인공은 혜성 충돌이 예상되는 전 날 밤 롤링 스톤즈와 U2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합동 공연을 펼치도록 노력하는 유엔의 평범한 사무관이었다. 이야기를 80퍼센트까지 완성한 민석은 문득 자신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음을 깨달았다. 책장으로 달려가서 찾아보니 아사다 지로가 쓴 단편소설 중 똑같은 내용이 있었다. 다른 점이라고는 뮤지션이 폴 매카트니에서 롤링 스톤즈와 U2로 바뀐 것뿐이었다. 허탈했다.
실망한 민석은 다시 수십만 년 전 외계인이 지구로 쳐들어 왔으나 공룡 말고는 싸울 상대가 없어서 '아, 아직 때가 아니구나' 하고 그냥 철수할까 하다가 할 수 없이 땅속에 들어가 잠복을 하고 있다가 지구인이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괴로워할 때 나타나 전쟁을 벌이는 싱거운 이야기를 생각해 냈으나 이 또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이미 영화로 만들었음을 깨닫고 절망했다. 그냥 내 얘기를 쓰자,라고 생각한 민석은 자신이 퇴직을 결심하면서 생각해 두었던 이야기를 급하게 어느 가장의 이야기로 각색해서 중편소설로 만들었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신파 소설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입소문을 타고 아름아름 팔리다가 무슨 드라마에 책이 노출이 되는 바람에 결국 그 해의 마지막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추운 겨울이라 가족 이야기가 먹혔던 것 같고 마침 그때 서울에서 공연되던 뮤지컬 [빅 피쉬]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성공의 맛은 천국 같았다. 민석은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TV에도 출연을 하는 셀럽이 되었고, 같이 출연했던 리포터와 바람이 나서 아내와 이혼을 했다. 그러나 술 마시며 노느라고 더 이상 베스트셀러 소설을 쓰지 못하자 리포터는 떠났고 팬들도 떠났고 민석은 도로 혼자가 되었다. 천국은 짧고 지옥은 길었다. 민석은 다시는 성공하지 말아야지 결심하면서 정말로 혜성이 날아와 지구와 충돌했으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민석을 제외한 세상은 멀쩡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