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연필로 쓰기] 중 <서부전선에서>
토요일 아침 여섯 시 조금 넘은 시간에 아내가 일어났다. 한 달에 한 번씩 지리산 고은정 선생의 스튜디오 '맛있는 부엌'에서 일박 이일 동안 열리는 약선요리학교에 가기 위해서다. 새벽에 내 가슴 위에 올라와 한참을 엎드려 놀던 순자가 계속 밥을 달라고 따라다니며 울기에 나도 할 수 없이 일어나 플라스틱 통을 꺼내 사료를 한 스푼 퍼주었다. 아내가 짐을 싸며 사랑한다고 말하길래 나도 사랑한다고 대답했더니 깜짝 놀라며 그러냐고, 나는 몰랐다고 눙을 쳤다. 여세를 몰아 계속 농담을 하면 재미있겠지만 나는 졸려서 어쨌든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두 눈을 감았다가 갑자기 라디오를 틀어 김어준의 뉴스쇼 주말 특근 하이라이트 방송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이라 부르면 안 된다고 한다)에 대한 여러 가지 인터뷰를 들었다. 그러나 라디오를 듣다 보니 갑자기 배가 아파져 화장실로 달려갔다.
내가 화장실 안에 있는 동안 아내는 버스터미널을 향해 출발했고 뒤늦게 밖으로 나온 나는 책장 앞에 서서 '칼럼 원고를 써야 할 텐데...'라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뭔가 글을 안 써질 때는 책장 앞에 서서 다른 책의 책등을 차례차례 훑어보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요즘 '북이오 프리즘'이라는 곳에 '글은 짧게 여운은 길게'라는 칼럼을 매주 연재하고 있는데 짧은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아내는 칼럼이다. 이번 주엔 연애편지에 대한 글을 써야지, 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다. 내일 저녁이 마감인데.
책꽂이에서 이런저런 책을 손으로 훑던 나는 책상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쌓아 둔 책 중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를 집어 들어 아무 데나 폈다. <서부전선에서>라는 짧은 글이 있길래 읽었는데 아주 웃기고 귀엽다. 김훈이 서쪽 해안부대의 한 생활관에 가서 병사들이 병영생활의 고충을 서로 주고받으며 작성했던 '토의록' 몇 페이지를 읽은 기록이다. 같이 생활하는 병사 하나가 코를 너무 많이 골아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조치를 취해달라, 박병장의 손목시계 알람 소리가 너무 크니 소대장은 조치해달라, 같은 시시한 내용이 이어지다가 후방에 두고 온 애인을 걱정하는 내용이 펼쳐졌다.
-변심한 여친을 욕하지 말자. 시야에서 멀어지면 정도 멀어지는 것이다.
-맞다.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우리들 나이에 어찌 기다릴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여기 와서 고생하는 동안에 여자들은 다른 남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을 것이다. 이것을 어찌하겠는가.
-안 보이면 마음은 멀어진다.
-할 수 없다. 갈 테면 가는 것이다.
아마도 다음 대목이 이 토론의 결론 대목인 듯싶었다.
-여자 문제로 괴로워하기에는 우리들 청춘이 너무 아깝다. 군대생활을 충실히 하고, 몸 건강하게 제대해서 더 멋진 여친을 사귀어서 배신한 여친에게 보여주자.
이 결론에 대해서 소대장은 '토의록'에 다음과 같은 강평을 남겼다.
-훌륭한 생각이다.
갑자기 조선시대 양반들로 변한 것 같은 병사들의 의고체도 웃기고 에일리의 '보여줄게' 가사 내용과 똑같은 결론 대목도 웃기지만 마지막 소대장의 '훌륭한 생각이다' 라는 강평이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김훈이라는 작가가 이 글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감하는지 읽어보고 나는 또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후방에 두고 온 여자의 변심을 걱정하는 것은 적벽대전에 나간 조조의 군대나 주유의 군대나 안시성에서 싸우던 고구려 군대나 당나라 군대나, 한국군이나 북한군이나 다 마찬가지일 터이다.
바다에 눈이 내렸고 바람이 불어서 눈보리를 옆으로 쓸어갔다. 바다도 산맥도 섬도 보이지 않았다. 눈보라는 모든 방위감각을 휩쓸어가서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눈보라 속으로 초병은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눈보라가 이쪽저쪽을 다 지우고 있었다.
서부전선에서 있었던 병사들의 여친에 대한 소박한 토론은 적벽대전과 안시성 싸움 등으로 종횡무진 달려가는 작가의 역사적·공간적 상상력에 의해 순식간에 인류 보편타당한 의제로 승격했고 그들의 푸념과 다짐 또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실록으로 확장되었다. 마지막 총구를 겨누고 있는 초병과 이쪽저쪽을 다 지우고 있는 눈보라 묘사 앞에서는 나는 그만 말을 잃고 만다. 이 짧은 두 개의 문단 안에 이런 허무와 연민과 공감을 한꺼번에 다 집어넣다니. 아, 이 이름난 문장가의 공력을 누가 막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