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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Feb 03. 2020

평범하고 비루한 삶에도 고귀함은 존재한다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스토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책 열 권으로도 모자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로 모든 사람이 그렇게 극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뛰어난 소설가는 평범한 사람의 생애라도 흥미롭고 의미 있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라는 소설을 통해 그런 일을 해냈다. 늘 실패하고 지고 좌절하기만 하던 영문학과 교수 스토너. 하지만 그가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인 걸 어쩌겠나. 책을 읽다 보면 스토너는 세상을 회피했던 것이 아니라 늘 그의 방식대로 평생 열심히 싸우고 버텨왔던 것임을 알게 된다. 다만 방식이 남들과 좀 달랐던 것뿐이다.

1965년 미국에서 발표되었으나 5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뒤늦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 기이한 소설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땅이나 파먹고 살 것이라 생각했던 소년이 농과대학에 들어갔다가 '중세 영어'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영문학자가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다. 젊은 날 파티에서 만난 수줍은 여성과 결혼을 했으니 결혼 생활은 불행했고 학교에서는 열심히 강의하는 교수였지만 학과장인 로맥스와의 불화로 늘 안 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뒤늦게 만난 사랑 캐서린과도 짧은 연애를 끝으로 헤어져야 했다. 급기야 딸까지 알콜 중독자가 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불행의 연속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스토너는 어떤 목적이나 의도 없이 문학을 사랑했으며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했고 말이 통하지 않던 아내 이디스에게도 연민으로 대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한 번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스승인 아처 슬론에게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는 장면이나 책으로 완성된 자신의 논문을 스스로 읽어보며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는 장면, 처음 캐서린 드리스콜과 서로 사모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들은 가슴 벅차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의 인생은 그리 잘 풀리는 편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저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혹적인 이야기다"라는 영화배우 톰 행크스의 리뷰처럼 스토너의 이야기엔 모험담이나 파격은 없다. 하지만 1900년대 초에 태어나 평생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남자의 생애가 품위 있고 차분한 문체로 그려져 있다. 뒤늦게 읽게 된 소설 [스토너]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하고 비루한 삶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가치 있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숨어있음을 알려주는 귀한 소설이다. 이런 클래식한 스타일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문화적 토대가 단단하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유럽의 독자들의 약간 멋지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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