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의 [단순한 진심]
코로나 19 광풍이 너무 거세고 정부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하는 상황이다 보니 독하다 토요일 모임을 하는 것이 옳은가 잠깐 망설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쓰는 등 조심하면 된다는 생각에 모임을 열기로 했습니다. 2020년 3월 14일 토요일, 광화문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 독하다 토요일 시즌 4의 세 번째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이었습니다. 윤혜자 씨와 제가 조금 일찍 가서 정은빈 대표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오진이 씨가 카톡으로 "수수부꾸미를 사 가야 할 것 같은데 인근에서 구하기가 어려워서 ㅠ.ㅠ"라는 귀여운 메시지를 보내 욌습니다. 수수부꾸미는 이 소설에서 꽤 큰 모티브가 되는 음식입니다. 곧 서동현 씨와 오진이 씨, 박재희 씨 등이 도착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때보다는 결석이 많았는데 최용석 씨의 경우는 모노드라마 판소리극인 <방탄 철가방> 4월 광주 공연 스태프 회의가 갑자기 잡혀 올 수 없게 되었다며 아쉬움을 전해 오기도 했습니다. 예정보다 조금 늦게 오는 사람도 있고 해서 3시까지 읽기로 했던 책을 3시 반까지 읽고 그 사이 세줄 평을 쓴 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대학로 동양서림의 한국 소설 코너에서 발견했는데 책꽂이에 포스트잇으로 붙여놓은 추천의 글(아마도 2층 위트 앤 시니컬의 유희경 시인이 썼을 것 같은)을 읽고 집어 들었노라는 말로 행사 시작을 알렸습니다. 사실 저는 '입양'처럼 심각한 소재를 다룬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읽고 나면 감동을 해서 뭔가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의무감이 부담스러워서겠죠. 처음엔 이 소설도 그런 종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윤혜자 씨는 [빛의 호위]라는 소설집에 있는 <문주>라는 건조한 단편이 이런 장편으로 발전했다는 게 놀랍다고 하면서 뛰어난 내용에 비해 책 표지가 너무나 후지다고 투덜댔습니다. 이 소설의 미덕은 건조함과 담백함인데 글발까지 좋아서 최근에 접한 소설 중 가장 빠르게 몰입해서 읽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감성적으로 동화가 큰 작품을 싫어하는 취향이라 예전에 독하다 토요일에서 함께 읽었던 김언수의 [뜨거운 피] 같은 작품을 읽기 어려워하는데 반해 이 책은 팩트만 나열하는데도 뭉클뭉클한 감동이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특히 연희가 죽을 때가 제일 슬펐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름 뜻풀이에서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되었다고도 했습니다. 소설의 1차적 소재가 된 입양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예전 다큐멘터리와 영화로 제작되었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입양아 수출국이었고 실제로 북유럽에서 입양을 많이 해 [김치]라는 책을 낸 벨기에인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끝까지 몰입해서 읽는 기쁨을 맛본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박재희 씨는 영화 같은 느낌으로 이 소설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첫 문장이 인상적이었는데 흑백에서 컬러로 조금씩 빛이 들어가다가 연희의 존재에서부터 컬러감이 확 살아나는 기분을 느꼈다는 것이죠. 특히 이름에 대한 의미를 곱씹는 장면들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고 특히 전에도 들은 바 있지만 '이태원'의 의미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작가가 드라이하면서도 감정의 상태를 잘 몰고 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작가의 장점을 얘기하면서 특히 노인의 뒷모습을 통해 외로움을 묘사하는 게 너무 좋다고 했더니 '닻을 내리지 못한다'는 표현이 절묘해 부러웠다고 했습니다. 박재희 씨도 여행기 등을 많이 쓰는 작가이다 보니 직업적인 면에서 작가의 글을 읽게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역시 연희의 장례식이라 할 수 있는데 장례식 전체가 너무 행복하고 따뜻해서 좋았고 연희가 보낸 편지들에 복희가 답장을 하지 않은 것도 개연성이 있어서 좋았다고 했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유예된다는 점에서 작가가 참 많은 생각을 했구나,라고 느꼈다는 것이죠. 박재희 씨는 [디디의 우산]부터 이번 독하다 토요일 소설 리스트가 너무 마음에 듣다고 했습니다.
오진이 씨가 조해진 작가는 처음이라고 말하자 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다 조해진 작가 작품은 처음 읽는다고 말해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습니다. 소설을 읽고 난 느낌은 한 마디로 '이 세대가 참 건강하다'였다고 했습니다. 암흑 속에서 태어난 나나가 이름의 역사를 찾아가면서 삶의 결핍을 이해하고 생명을 보듬게 되는 이 이야기는 현재 코로나 19 사태를 맞아 '단순한 진심'의 힘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 단순한 진심을 놓치고 있어서 신천지 같은 허황된 종교에 함몰되는 게 안타깝다고도 했습니다. 자신은 '합정동'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동네 이름에 관심을 가져도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다는 소감을 털어놓았습니다.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한 자씩 겹치는 것은 너무 의도적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표했습니다.
박재희 씨가 이 책을 읽을 때 우연히도 넷플릭스에서 [빨간 머리 앤]을 보고 있었는 철로변에 버려진 아이인 나나와 환영받지 못한 아이였던 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어 그 아이들이 얼마나 아득할까 하는 걸 더 잘 느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도 우연의 즐거움이 아닐까 하면서요. 그 얘기를 듣고 윤혜자 씨가 나나는 좋은 양부모를 만났지만 그래도 늘 눈치 보는 삶을 살았던 게 슬프다고 하자 박재희 씨가 오래전 코펜하겐의 유람선에서 만난 한국인의 얼굴을 한 20대 초반의 여성에 대한 추억을 얘기했습니다. 분명히 한국에서 입양된 것 같은 여자였는데 자신을 계속 유심히 바라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원망이나 분노의 눈초리라기보다는 뭔가 궁금하고 그리운 듯한 표정이어서 더욱 애틋했다고 했습니다.
정아름 씨는 '돌이켜 보면 전부 다 사랑이 있었다'라는 게 주제가 아닐까 하고 느꼈다는 말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첫 장면을 읽고 우울하겠구나, 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결국은 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이죠. 아이가 발견된 곳이 철길이 아니라 대합실이었다는 것도, 나나의 입양을 결정한 양부모의 마음도, 기관사의 어머니가 아이를 보살펴준 것도 다 사랑이 깔려 있어서 가능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우주라는 아이의 등장을 통해 아이가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한 인간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생각의 변화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마지막에 문경이 문주를 안아줄 때 또 눈물이 나서 창피했다고(사실은 쪽팔렸다고 말했습니다) 말하자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도, 나도 울었다"라고 해서 모두 웃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어쩌면 그 옛날에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하자 박재희 씨가 혈연만이 아니라 생활과 생계를 함께 하기만 해도 가족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윤혜자 씨와 저는 전날 잠이 안 와서 우연히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를 다시 보았는데 거기선 밥을 같이 먹는 것만으로도 가족이 되는 이야기가 나오죠. 또 우연의 일치로 그런 영화를 보고 다음날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기타노 다케시가 한 유명한 말(가족이란 남들이 안 볼 때 어디다 몰래 가져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을 예로 들며 최근에 혈연이라는 굴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생각이 많아졌던 것들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임기홍 씨가 말을 안 하고 있길래 뭐라도 좀 얘길 해보라고 채근을 했더니 "저는 별로 할 말이 없는데요..."라면서 영화 [가족의 탄생] 얘기를 꺼냈습니다. 거기 나오는 정유미의 대사 "헤픈 거, 나쁜 거야?"에 대한 이야기였죠. 누군가를 품고 선의를 베푸는 게 어찌 보면 쓸 데 없고 한가한 일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이 소설은 온통 그런 얘기라는 것이죠. 누군가를 돌보는 이야기이고 돌봤던 이야기인데 그 중심엔 '아기'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더군요. 문주, 나나, 복희, 우주까지.
정아름 씨는 이렇게 잔잔한 느낌의 소설을 읽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원래 극적인 걸 좋아하는 타입인데([뜨거운 피]가 내 스타일이에요.ㅋㅋ) 이 책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공감과 감동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밥집 손님으로 세 번 정도 만난 게 전부였던 문주가 추연희를 왜 보살피나 생각해 보면 그건 인간애라고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추연희 얘기가 나오자 오진이 씨도 연희가 복희를 못 만나고 죽어서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습니다.
정아름 씨가 잔잔하다는 것에 대해 임기홍 씨가 반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이 소설은 너무 극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원래 최루성 영화를 보면 우는 단순한 타입인데 어느 정도냐 하면 감독이 '여기서 울어!' 하면 정확히 그 지점에서 칼 같이 눈물을 펑펑 쏟는 관객이라는 거죠. 그러면서도 영화관을 나설 땐 "에이, 재밌긴 한데 너무 신파다..."라고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소설도 읽을 땐 좋다가 다 읽고 나니 구조적으로 너무 잘 짜여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너무 핑크빛이고 훈훈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어디 한 곳이라도 어두웠으면 더 현실성이 있었을 텐데. 박재희 씨도 연희는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하자 임기홍 씨가 예를 들어 추연희가 낙태를 알선해 주고 돈을 챙긴 과거가 있다거나 하는 걸 하나 집어넣었으면 어땠을까 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소설은 지금보다 어두워지겠지만 삶이란 게 원래 어두운 거니까요.
저는 작가의 세계관이 변해가는 과정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묘사하는 게 너무 뛰어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앞부분에 나나가 자신의 남자 친구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떤 모임에서 좌중을 웃기던 그 남자가 밑으로는 손수건을 꽉 움켜쥐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애쓰고 있구나'라는 걸 느낍니다. 그런데 나중에 헤어지자며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할 땐 주먹 힘에 변화가 없죠. 나나는 그걸 보고 이 사람의 말이 진심임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자신도 외로움 때문이 이 남자를 이용했던 점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서늘한 세계관이죠. 그랬던 나나가 우주를 임신하고 복희식당에서 추연희를 만나고 백순두부탕을 먹고 하면서 서서히 변하게 되죠. 저는 이 모든 변화 과정에서 작가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러운 필력입니다.
서동현 씨는 책을 다 못 읽고 왔다고 하면서 첫 문장을 읽었을 때는 되게 세고 건조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나가다 보니 가족으로 인해 생긴 분노나 슬픔 등을 조근조근, 바스락바스락 할 얘기를 다 얘기하는 소설이었다고 했습니다. 건조한 체하면서도 촉촉한 문장이라고 하면서 "김훈이 부드러워지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절묘한 표현을 했습니다. 김훈이 굉장히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문체를 구사하지만 결국은 따뜻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조해진도 슬픔이 아니라 따뜻함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가 쓰고 있는 '작은 것에 대한 배려'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고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본질을 파고들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라 했습니다.
정아름 씨가 이 작가는 젊은데도 뭐 이리 인생을 깊이 있게 다루냐, 1976년생인 작가의 책을 읽으며 너무 감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었다고 말하자 다들 조해진이 그렇게 젊진 않다고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서동현 씨가 이름에 대한 가벼운 집착도 참 좋았다고 하면서 합정역에 얽힌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하자 윤혜자 씨가 "요즘은 합정역 5번출구가 대세 아닌가?"라고 농담을 쳤습니다. 어쩌자가 다시 김훈의 이야기가 다시 나왔는데(윤혜자 씨가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 중 똥 얘기가 너무 좋다고 하는 바람에) 김훈은 자기 글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쓰는 게 마음에 든다고 박재희 씨가 말했고 이어 다시 윤혜자 씨가 받아 김훈을 보면 꼰대와 마초가 얼마나 다른 종류의 사람인지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진이 씨는 소설에서 장 뤽 고다르의 영화 <비브르 사비>로 시작해 나나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게 흥미로웠다고 했고 정아름 씨는 제가 가져온 단편집의 <문주>라는 단편을 펼쳐 보고서는 이런 단편이 이렇게 유장한 이야기로 발전했다는 게 놀랍다고 했습니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얘기가 다사 나오면서 유명한 입양아 수출국이었던 우리나라 과거를 되짚어보다가 예전에 우리나라 정부 부처 중 '기생관광과'가 있었다는 윤혜자 씨의 이야기에 모두들 경악했습니다. 예전에 한창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기생관광을 올 때 그 수요가 자못 커서 그런 정부조직이 다 있었다는 것을 SBS스페셜인가에서(남보라가 출연했다는) 봤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기홍 씨는 기관사를 아직도 미워하고 있던 나나는 신을 미워하는 리사와 일맥상통하기도 하는데 결국은 진실 앞에서 그런 마음들이 풀어지는 감동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박재희 씨는 연희가 죽고 나서 우주가 그만큼 문주에게 간 것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싸이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서동현 참 멋있다'라는 얘기가 나오며 간지남으로 등극을(왜인지 이유는 까먹었습니다) 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박재희 씨는 자신은 독서모임은 처음인데 너무 재밌다고 하면서 혼자 읽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여기 와서 듣게 되고 다시 생각하게 되어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그 느낌과 감상이 다 다르다는 걸 지난달에 처음 느꼈다고 합니다. 윤혜자 씨는 설사 마음에 들지 않게 읽은 작품이라도 여기 와서 함께 얘기하다 보면 다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설득당하는' 경험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재희 씨가 그렇다면 작품을 읽고 오면서 각자 점수를 1부터 10까지 정해 오면 어떨까 하는 농단 섞인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변한 점수를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거라는 얘기죠. 카톡으로 먼저 의견을 보내오긴 했지만 이번 모임에서 유일하게 작품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야주었던 김은주 씨가 안 와서 너무 아쉽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같이 얘기해 보면 훨씬 더 흥미로웠을 거라는 아쉬움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달엔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아, 그냥 헤어지지는 않았고 몇몇은 광화문의 평안도만두집에 가서 만두전골과 수육 등을 먹었습니다. 소맥도 좀 마셨는데 많이 마시지는 않고 금방 헤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줄 평을 몇 개 붙이고 제가 작년 12월 31일에 회원들에게 보냈던 문자 메시지를 디시 한 번 첨부합니다. 당시에 왜 이 책들을 골랐는지에 대해 짤막하게 쓴 글입니다.
세줄 평 :
주인공 문주의 차갑고 개인적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연희와 복희 등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뜻밖에도 따뜻한 인간애와 연대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특히 복희식당의 유래를 알게 되는 순간은 먹먹함 그 자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이후로 오랜만에 전율하면서 읽었던 소설. - 편성준
조해진의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건조한 문체가 와 닿지 않았다. 그 옛날 이제는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수잔브링크의 아리랑>보다 입양아에 대한 인식보다 깊어 보이지 않았고, 그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영화에 담겠다는 서영의 이야기는 어설퍼 보였다.(방송작가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입장에서 겉핥기 느낌이랄까. 그래 놓고 내 이름의 의미, 銀珠 “은구슬”, 성까지 더해서 “금은구슬”을 환기한 건 반가웠다). 하지만 나나가 이태원과 복희 식당의 복희와 만나고 그를 간호하는 과정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요즘 드라마 이태원클라쓰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토니와 할머니 이야기도 그렇고, 이태원의 이야기 그들의 연대에 관심이 생겼다. - 김은주
암흑에서 나와 저마다 다른 이름의 궤적을 통해 삶의 결핍을 이해하고 생명을 보듬게 되는 이야기. '진심'을 담아, 의 '진심'에 대해 새삼 되돌아보고 내 이름의 의미와 나의 기원에 대해 다시 한번 좌표를 갖게 했던 소설이었다. '독하다' 에 감사. - 오진이
작가는 건조하고 예리한 문체로 비현실적일 만큼 선의를 가진 약한 사람들을 등장시켜서 너무나 따스한 얘기를 했네요! 이름에 대해 책을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타자에 의해 존재에 대한 염원과 호의를 부여받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모든 사람의 이름이 가진 의미가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무엇보다도 저는 작가의 필력, 묘사가 놀라웠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소재나 구조를 힘 있게 끌고 가는 중심은 감정인데, 두려움, 그리움, 외로움, 노년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놀라울 만큼 섬세하고 예리해서 설득당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모든 무채색의 존재가 암흑으로부터 빛을 얻는 여정에는 타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삶을 지탱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의미가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연민, 진심이라는 것.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다시 묵직하게 다가왔고요. 독토에서 서로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경험이 참 좋습니다! 4월도 기대돼요. -박재희
안녕하세요? 독하다 토요일 회원 여러분! 벌써 2020년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내년 시즌4에 읽을 책 여섯 권을 오늘 선정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다시 당대로!'라고 붙여봤는데요. 그동안 '그들의 리즈시절' 등등 이전 작품들도 건드려 보고 했습니다만 워낙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이미 읽은 작품인 경우가 많았고 또 예전 작품들은 시대적으로 감수성이 처지는 느낌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시 현재로 돌아왔습니다. 일단 제 주관대로 선정을 했고 작품마다 간단한 선정 이유를 붙였으니 혹시 개선점이나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
디디의 우산 - 황정은 :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입니다. 황정은은 [백의 그림자]부터 좋아하던 작가였기에 이번 신작 소설집도 흥미롭게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2.
대도시의 사랑법 - 박상영 : 박상영은 요즘 가장 핫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퀴어 소설에 한정되지 않고 계속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재능 있는 작가의 수다스러운 장편소설입니다.
3.
단순한 진심 - 조해진 : 제가 자난달 제주도에 내려가서 눈물을 뿌리며 읽은 장편소설입니다. 조해진은 문장이 좋고 구성이나 역사를 다루는 방법도 좋습니다. 진지하면서도 마냥 무겁기만 한 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희망과 연대를 얘기하는 좋은 소설가라 생각합니다.
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 저는 <관내분실>이라는 단편을 통해서 처음 만났는데 SF를 통해 인간의 이야기를 탁월하게 하고 있는 김초엽 작가의 첫 작품집입니다. 베스트셀러더군요. 독서 리더 33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이기도 합니다.
5.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 '판교 리얼리즘'이라는 조어와 함께 그야말로 혜성 같이 등장한 작가죠. 표제작 말고도 좋은 작품이 많습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감수성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6.
주군의 여인 - 알베르 꼬엔 : 이번 시즌엔 외국 소설을 한 편 꼭 넣어보고 싶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책 등 프랑스 소설 전문 번역가 백선희 선생이 강력하게 추천해 주신 책입니다. 지난 세기에 프랑스에선 굉장한 화제였다고 들었습니다. 백선희 선생이 번역해 보고 싶은 작품이라고 했는데 작년에 이미 다른 제목으로 출간이 되어서 섭섭해하셨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이 소설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원어와 번역본으로 같이 음미해보는 기회도 마련해 보겠습니다(장담은 못 드립니다).
이상 여섯 권입니다. 차례대로 갈까요, 아니면 먼저 읽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혹시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읽는 순서를 바꾸는 건 어려운 일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