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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4. 2020

어디서 앙탈이야?

둘 다 한심해서 다행입니다

말이라는 게 정색을 하고 따져보면 참 웃길 때가 있다. 어제 고양이 순자와 장난을 치다가 순자가 반항을 하길래 “어디서 앙탈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순자 대신 아내가 “어디긴 어디야? 성북동 성북로 14길 161이지!”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둘이 배를 잡고 웃었다. 3년 반 전 우리가 성북동소행성으로 이사 온 직후 이 집에 살았던 아저씨와 다툴 때(보일러 석유통에 남겨놓고 간 기름값을 받아야 한다고 몇 번을 찾아와 야료를 부렸다) 내가 마당에서 그만 오시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아저씨가 “이 사람이 어디서 소릴 지르고 난리야?!”라고 화를 내길래 나도 “어디서 소릴 지르긴. 여기서 지르지!”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했는데 집 안에서 그걸 듣던 아내는 내 대답이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아까도 한옥 공사 현장을 다녀오다가 “어디서 소릴 지르고 난리야?”라고 농담을 하고는 “어디긴. 성북동 9길 파출 지소 앞이지.” 하고는 깔깔깔 웃었다. “나이가 몇인데 그러고 있어?” 하면 “마흔 살 일 개월 십칠일 됐다.”라고 대답을 하고 “야, 너랑 나랑 알고 지낸 지가 얼만데.” 하면 “15년 2개월 3일 됐지!” 등등으로 바리에이션을 치며 해동꽃집 앞을 걸었다. 둘 중 하나만 이러면 좀 창피할 텐데 둘 다 한심한 성향이라 다행이다.

(*성북동 성북로 14길 161은 우리 집 주소가 아니고 아일랜드 대사관저였던 곳이니 혹시라도 찾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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