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처가의 캘리
남자의 진면목은
술을 따를 때가
아니라 아내의 말을
따를 때 나온다
아내는 재밌는 사람이다. 어떤 동네로 이사를 가든 며칠이 지나면 괜히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 집 괜찮네, 하고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다. 예전에 성수동 살 땐 나와 같이 지나다니던 골목의 개인주택의 대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가서 주인집 할아버지와 한참 대화를 나누고 나왔다는 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냐니까 처음엔 마당에 핀 꽃과 나무에 대해 물어봤는데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유명한 화가라서 나중엔 그림 얘기를 한참 했다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주인과 친분을 트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로도 아내는 각종 개인주택에 끊임없이 관심을 내비치다가 결국 성북동에 있는 주택을 발견해서 지금 살고 있는 '성북동 소행성'으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이번 이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괜히 성북동 골목들을 걸어 다니다가 멀쩡하게 생긴 한옥집 대문 안을 들여다보곤 하는 습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남의 집 담벼락 앞에 서서 이 집 괜찮은데, 하면서. 그러면서 아내는 아래쪽으로 내려와서 살고 싶다, 한옥에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틈만 나면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종의 자기 암시인데, 아내는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믿는 편이라 그렇다. 좀 지저분한 표현을 빌어보자면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는 말을 믿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 마법은 통했다. 신기하게도 갑자기 산꼭대기에 있는 집을 내놨는데 네 시간 만에 팔렸고 우리는 그날 자주 들여다봤던 그 한옥집이 비어 있음을 확인하고는 바로 계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성북동에 있는 멋진 한옥을 고치고 있을 수가 있었겠는가. 무조건 아내의 말을 따르길 잘했다. 남자의 진면목은 술을 따를 때가 아니라 아내의 말을 따를 때 나타난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