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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22. 2020

세븐일레븐 커피

성북동 소행성 시즌2

세븐일레븐 커피 레귤러 사이즈. 옆에 있는 건 돌로 만든 문진인데 영화 [일일시호일] 보고 온 날 썼던 포스트잇 글씨를 붙여놨다.

이사를 오고 나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편의점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편의점까지 언덕길을 십 분이나 내려갔다가 소주 한 병 사서 다시 올라오려면 기진맥진했는데 이젠 편의점까지 일 분도 안 걸린다. 더구나 요즘은 1,200원짜리 세븐일레븐 커피가 비용 대비로 꽤 괜찮은 편이다. 오늘도 새벽에 눈이 떠진 김에 화장실 가듯 세븐일레븐에 갔다 왔다. 전엔 한참 언덕을 내려와 가야 했던 바로 그 편의점이다. 새벽 근무조인 남자 사장님이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물을 떠놓고 면도를 하고 계셨다. 아이고, 어제도 면도할 때 오시더니 오늘도 면도할 때 오시네,라고 알은체를 했다. 매일 이 시간에 커피를 마시는 거냐고 묻길래 차마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 논다고 대답할 수는 없어서 그냥 눈이 떠진 김에 일이나 하려고 커피를 사는 건데 이 커피가 커피숍 커피보다 낫다는 덕담을 했다.


사장님은 여성 고객들이 커피를 많이 사간다고 하면서 요 앞에 사는 어떤 분은 출근할 때마다 스타벅스 컵을 들고 와 거기에 커피를 담아간다고 했다. 세븐일레븐 커피가 졸지에 스벅 커피로 신분 상승을 하는 것이다. 그걸 뭘 거기다 담아가냐고 했더니 아무 말도 안 하더란다. 나는 씁쓸하네요,라고 하나마나 한 얘기를 했다. 사장님은 동네 물정에 밝은 편이다.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와서 이런저런 비밀 얘기를 털어놓는데 어떤 아줌마들은 성상담까지 하는 바람에 아주 곤란하다고 하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사장님은 여행사를 30년이나 해서 사람을 척 보면 견적이 딱 나온다고 한다. 지난주에 옆에 있는 고깃집 사장님한테 정말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사장님은 여행사만 한 게 아니라 이것저것 안 한 사업이 없는 분"이라고 한술 더 뜨는 것이었다. 여행사를 30년이나 하고 사람을 척 보면 견적이 나온다면서 나한테는 한 마디도 안 해주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별 볼 일이 없는 놈으로 낙인찍힌 것 같다. 커피나 마시고 책이나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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